[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83>청운동 수도 가압장과 윤동주의 우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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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 전시 중인 목제 우물틀. 중국 룽징의 윤동주 생가에서 옮겨온 것이다.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에 전시 중인 목제 우물틀. 중국 룽징의 윤동주 생가에서 옮겨온 것이다.
윤동주는 연희전문학교에 다니던 시절,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과 종로구 누상동에서 하숙을 했다. 그 무렵 ‘자화상’이라는 시를 썼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시에는 우물이 등장한다. 윤동주에게 우물은 세상과 소통하고 스스로를 성찰하는 매개물이었다.

종로구 누상동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청운동엔 윤동주문학관이 있다. 문학관 건물은 원래 청운동 수도 가압장이었다. 수도 가압장은 수돗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기 위해 수압을 높이는 시설이다. 상수도 여건이 좋지 않았던 1970년대에 주로 고지대 초입에 많이 생겼다. 청운동 가압장은 1974년 지어졌다. 이후 이 일대의 상수도 여건은 계속 나아져 2008년 운영을 중단했다. 한동안 방치됐던 이곳은 2012년 윤동주문학관으로 다시 태어났다.

문학관 전시실엔 중국 룽징(龍井)의 윤동주 생가에서 옮겨온 우물이 있다. 정확히 말하면, 사각형 목제 우물틀이다. 여기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우물 옆에 서면 동북쪽 언덕으로 윤동주가 다닌 학교와 교회 건물이 보였다고 합니다. 이 우물에 대한 기억은 오래오래 남아 그의 대표작 ‘자화상’을 낳습니다.” 윤동주는 이 우물을 자주 들여다보았다. 거기 자신의 얼굴이 비치고 하늘과 별이 비치고, 식민지 현실이 떠올랐을 것이다.

옛 수도 가압장 건물엔 물탱크가 두 개 있었다. 문학관으로 꾸미면서 하나는 천장을 텄다. 그 물탱크의 벽에는 수위(水位)의 흔적이 여러 줄로 남아 있다. 마치 우물 속에 들어온 듯하다. 또 다른 물탱크는 밀폐된 공간으로 남겨 두었다. 윤동주가 최후를 맞았던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의 분위기를 살린 것이다. 천장에 연결된 인부들의 출입 통로는 창으로 활용했다. 이 공간에 들어서면 온통 칠흑처럼 캄캄하다. 하지만 천장 구석의 작은 창에서 한줄기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윤동주가 갈망했던 자유의 빛이다.

1945년 2월 16일, 윤동주는 후쿠오카의 감방에서 생을 마쳤다. 28년의 짧은 청춘이었다. 기일을 앞두고 옛 수도 가압장에서 만나는 윤동주의 우물. 오래된 탓에 목제 우물틀의 표면은 비늘처럼 겹겹이 들뜨고 모서리는 여기저기 떨어져 나갔다. 청년 윤동주의 삶인 듯, 보는 이를 시리게 한다.

이광표 논설위원·문화유산학 박사
#윤동주#자화상#청운동#윤동주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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