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표의 근대를 걷는다]장충동 태극당과 빵집의 추억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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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장충동 태극당 내부의 1970년대 흔적들. 오른쪽 사진은 국내 최초로 사용했던 자동 금전등록기.
서울 중구 장충동 태극당 내부의 1970년대 흔적들. 오른쪽 사진은 국내 최초로 사용했던 자동 금전등록기.
그곳, 문 열고 들어서면 정면에 ‘태극식빵’ 안내문구가 커다랗게 붙어 있다. ‘미 캘리포니아산 건포도와….’ 적당히 촌스럽고 적당히 정감이 가는 디자인이다. 카운터에 떡하니 놓여 있는 누런 나무 안내판엔 ‘납세로 국력을 키우자, 계산을 정확히 합시다’라고 써 있다. 오래되어 칠이 벗겨지고 글씨는 더러 희미하다. 구석진 곳 한쪽 벽체엔 고장 난 두꺼비집(누전차단기)이 눈에 들어온다.

서울 장충동에 있는 태극당. 1946년에 생겼으니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처음 명동에 생겼다가 1973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태극당은 2016년 건물을 리노베이션했다. 흥미롭게도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곳곳에 과거의 흔적을 잘 살렸다.

건물 입구에 예서체 한자로 붙어 있는 ‘菓子中의 菓子 太極堂’이란 간판부터 고풍스럽다. 내부 한쪽 벽엔 거북선 전투와 축산농장 모습을 표현한 대형 부조 2점이 붙어 있다. 카운터 나무 안내판의 세금 성실납부 문구는 그야말로 1970년대식 구호다. 바로 옆 기둥에도 ‘납세는 국력, 꼭 받아가세요 영수증을’이라는 문구가 여전히 붙어 있다.

리노베이션을 하면서 주방이 있던 곳을 고객들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타일과 벽돌을 옛것 그대로 살렸고, 고장 난 전기 스위치와 두꺼비집도 그대로 두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옆 벽에는 옛 전기배전판을 보존해 놓았다. 그 옆으로는 1973년부터 태극당이 사용했던 자동 금전등록기가 전시되어 있다. 우리나라 첫 금전등록기다. 이것을 통해 손님들에게 영수증을 발행해 주었다. 태극당 내부의 인테리어 하나하나는 모두 근대 일상의 흔적이다. 생활사박물관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우리 주변엔 오래된 빵집들이 있다. 1945년 생긴 전북 군산의 이성당, 1956년 생긴 대전의 성심당, 1957년 문을 연 대구 삼송빵집…. 사람들은 이 빵집에서 빵만 사는 것이 아니라 거기 담긴 추억과 역사를 함께 챙긴다. 성심당은 지난해 대전의 옛 충남도지사 공관에서 성심당의 역사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누군가는 빵을 먹으러 빵집에 가지만, 나는 1970년대 분위기를 즐기기 위해 태극당에 간다. 태극당 계단 한쪽엔 이렇게 적혀 있다.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않았습니다.’

이광표 오피니언팀장·문화유산학 박사
#태극당#태극식빵#리노베이션#첫 금전등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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