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실험실]점심시간 1시간 커플 탐색전… 그 와중 ‘♥의 화살’은 꽂혔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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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자 3인의 런치미팅 참가기

《젊음은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돼 있다. 하지만 2016년 대한민국의 청춘에게 연애는 사치로 여겨질 때가 많다.

최근 꿈과 희망도 버린다는 ‘7포 세대’까지 나왔지만 ‘삼포 세대’가 처음 등장할 때부터 포기 1순위는 바로 ‘연애’였다.

어렵게 취업문을 통과해도 꽃길은 열리지 않는다. 쏟아지는 업무에 잦은 야근과 회식. 퇴근이 아니라 “집에 다녀온다”는 표현까지 쓴다.

그래도 본능은 사랑을 갈구하기 마련.

이에 이 땅의 청춘남녀는 언제부턴가 ‘효율성’을 연애의 대전제로 삼기 시작했다. 최근 20, 30대 직장인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는 ‘런치 미팅’이 대표적 사례다.

돈과 시간이 배로 드는 저녁은 피하고, ‘원샷 원킬’, 일대일 만남보단 한 번에 여럿을 보는 단체미팅으로 회귀했다. 동아일보의 미혼 여기자 3명이 이 흐름에 발맞춰 런치 미팅에 나가봤다. 뷰티 분야의 직장에 다니는 상대편에겐 사전에 취재임을 알리고 양해도 구했다.》
○ “편리한 게 나쁜가요? 어차피 밥은 먹잖아요”

20, 30대 직장인들의 효율적 연애의 한 방식인 런치 미팅. 본보의 여기자 3명이 지난달 28일 점심시간을 이용한 미팅에 참석해
 악수를 하고 명함을 교환하는 등 첫인사를 나누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20, 30대 직장인들의 효율적 연애의 한 방식인 런치 미팅. 본보의 여기자 3명이 지난달 28일 점심시간을 이용한 미팅에 참석해 악수를 하고 명함을 교환하는 등 첫인사를 나누고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지난달 28일 오전 11시 50분 서울 종로구의 한 이탈리아식당. 수습 생활을 마친 지 얼마 되지 않은 여기자들은 설렘 속에 시간 맞춰 도착했다. ‘업무(취재)’인지라 눈치 안 보고 왔다. 하지만 상대는 10분 정도 늦었다. 그러나 이 정도는 문제 삼지 않는다. 대화할 시간이 다소 짧아졌을 뿐. 런치 미팅을 3번 해봤다는 서모 씨(30)는 “어차피 바쁜 사람들끼리 밥 먹을 시간을 ‘생산적으로’ 이용하자는 게 런치 미팅의 취지”라고 했다.

초면의 어색함은 잠시, 일단 명함부터 주고받았다. 물론 서로 일터가 어딘지 잘 안다. 런치 미팅은 주로 회사 동료가 한 팀을 이룬다. 참석자가 서로의 ‘신분’을 연대 보증하는 셈이다. 김재희 기자(25·산업부)는 “맘에 들어도 연락처 묻기가 난감한데 명함을 교환해 자연스럽게 이를 해결하는 점도 좋았다”고 평했다.

곧장 음식 주문에 들어갔다. 대부분 파스타나 볶음밥을 골랐으나 노지원 기자(28·정책사회부)는 2만7900원짜리 안심스테이크를 택했다. 그는 “런치 미팅은 더치페이가 전제조건이라 메뉴를 맘껏 고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 따르면 미혼 남녀가 첫 만남 때 ‘적정하다’고 여기는 2인분 식사비용은 평균 4만4300원. 관례처럼 남성이 지불했다면 음료수까지 3만4400원을 쓴 노 기자는 눈총을 받을 수도 있었다.

솔직히 대화 내용은 ‘수박 겉핥기’였다. 사는 곳과 출퇴근 시간 등 ‘호구 조사’하느라 시간이 다 가버렸다. 미팅 후 진행한 간단한 설문에서 6명 전원이 연애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은 ‘성격과 취향’을 확인할 겨를은 없었다.

○ 효율성은 100%, 그러나 감정은…


만남은 정각 오후 1시에 끝났다. 박모 씨(27)는 “선배한테 업무 연락이 왔다. 그만 가봐야겠다”고 말했다. 업무에 묶여 있는 회사원이니 어쩔 수 없지만 왠지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기회 되면 또 봬요.” 다신 보지 말잔 소리로 들렸다. 하지만 ‘60분 전쟁’과도 같았던 만남 속에서도 큐피드의 화살은 꽂혔다. 강모 씨(25)는 “이상형을 만났는데 짧게 봐서 너무 아쉽다”며 “다음엔 저녁에 따로 만나고 싶다”고 한 기자에게 전해왔다.

듀오에 따르면 런치 미팅은 2000년대에도 존재했다. 이명길 연애코치는 “당시엔 런치 미팅을 제안하면 ‘정 없다’며 사양했는데 최근엔 ‘깔끔하다’며 선호한다”며 “연애도 변수가 많은 아날로그적 방식보단 정해진 대로 진행하는 디지털 스타일로 바뀌었다”고 귀띔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캐주얼한 사랑의 보편화”라고 설명했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요즘 젊은 세대는 연애 때문에 일에 영향을 받는 것도 꺼립니다. 런치 미팅은 시간적 경제적 효율성뿐 아니라 정서적 소모도 훨씬 덜하죠. 주선자의 체면을 생각해 애프터를 할 필요도 없어 ‘감정의 효율적 관리’도 가능합니다.”

이날 오후 6시경 한 기자에게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점심 적게 드시던데, 저녁은 많이 드세요.” 벌건 대낮의 전초전에서 살아남은 남녀 1쌍은 따로 만남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100%의 효율성을 추구하는 런치 미팅. 애프터 성공률은 33%였다. 누군가에겐 0%였지만.

이지훈 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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