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서울!/서혜림]전화를 걸 관리 사무실이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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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귀촌을 결심하고, 첫해 어렵사리 농가주택을 연세 40만 원에 구했다. 월세가 매월 집세를 내는 개념이라면, 연세는 1년에 한 번씩 세를 내는 개념으로 주로 시골집 세를 받을 때 그렇게 내는 경우가 있다.

부동산에서 집을 구했더라면 이런 집을 구하기는 어려웠을 텐데, 마을분들에게 물어물어 빈집을 찾았다. 워낙 비어 있은 지 오래되고, 집 자체가 옛날식이어서 골조만 남겨놓고 집을 홀딱 뒤집어서 남편과 셀프로 수리했다.

몰라서 덤볐지 지금 하라면 도저히 못 할 일이었다. 화장실부터 보일러 엑셀파이프까지 깔고, 벽도 다시 세웠으니 정말 집을 한 채 지은 셈이다. 공사비만 1000만 원 가까이 들어 돈을 크게 아꼈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진짜 얻은 것은 따로 있다. 바로 내가 사는 집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것. 직접 공사를 했으니 단열층을 두껍게 한 벽이 어느 쪽인지, 전기 배선이 어떻게 지나는지, 하수와 수도는 어떻게 지나는지 모두 알고 있다.

한번은 변기가 막혔다. 서너 집이 함께 사용해도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굵은 관을 썼기 때문에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일단 슈퍼에서 물리적으로 뚫어주는 기구와 화학적으로 녹이는 약품을 모두 사다가 해봐도 뚫리지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을 내릴 때마다 연결되어 있던 다른 관들까지 역류했다. 집 안이 온통 엉망이 되고 짜증이 나는 상황이었다. 모든 연결관을 직접 심었어도, 다시 땅을 파서 관을 뜯어볼 수는 없는 상황이니 계속 머릿속으로 어디가 문제일지 그려보고 또 그려볼 수밖에 없었다.

직접 공사를 해 본 마을 선배들과 이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다가 하수관의 가장 마지막 부분을 점검해 보기로 했다. 마을 정화조에 연결되는 부분에서 답이 나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관이 조금 밀려나 한쪽 벽을 막은 것이 문제였다. 톱을 들고 관을 조금 잘라내니 쉽게 해결되었다. 원인을 찾는 데 며칠 고생을 하기는 했지만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뿌듯했다. 시골에 와서 별걸 다 해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시에 살 때는 집에 뭔가 조금 고장이 나도 불편함이 없었다. 관리 사무실에 전화를 하면 복도의 전구도 갈아주시고, 주변 청소도 절로 되었다. 하지만 농가주택은 다르다. 눈이 오면 내 차가 나갈 수 있도록 눈을 쓸어야 하고, 풀이 너무 많이 자라면 직접 예초기로 깎아야 한다. 지난주에는 공사 때 썼던 각종 삽들이 지저분해 보여 정리해서 걸어 두면서 임팩트 드릴로 벽에 삽걸이를 직접 만들어 두었다. 삽질도 낫질도 할 줄 알게 됐다. 물론 동네분들이 보면 답답하다고 하시겠지만, 못질도 똑바로 못 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거의 ‘맥가이버’가 되어 가는 것 같다.

조금 불편해도 내 손으로 문제를 해결해가는 과정, 이런 게 시골 사는 재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서혜림 청년 미디어협동조합 로컬스토리 운영


#귀촌#농가주택#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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