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원의 명화를 빛낸 장신구]신비감을 증폭시키는 진주귀걸이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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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페르메이르 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얀 페르메이르 作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
깊은 땅속 어둠을 뚫고 피어난 환상 속의 꽃일까, 아니면 암흑의 바다에서 피어난 한 송이 연꽃일까. 그녀는 수백 년 동안 우리 상상력의 바퀴를 아플 만큼 돌리게 한 주인공이자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와 경쟁을 벌일 수 있는 유일한 슈퍼스타다. 네덜란드의 17세기 화가 얀 페르메이르가 그린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다.

43세의 짧은 삶을 살았던 페르메이르는 50여 점의 작품을 제작하는 데 그쳤고 지금 남아있는 것은 32점에 불과하다. 빛의 마술사인 그는 빛을 때로는 고체처럼, 때로는 액체처럼 요리해서 신비감을 짙은 안개처럼 풀어 놓았다. 그는 그저 그런 무심한 일상의 실내 정경에 여인을 한두 명 등장시켜 편지를 읽거나 수를 놓거나 악기를 연주하게 했을 뿐인데 그림을 보는 순간 우리의 가슴에는 무수한 감동의 핀이 꽂힌다. 작은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은 고요함을 채집하는 도구이자 인물의 내면까지 우리와 만나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는 전 세계 아트 수집가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 하는 작가이자 미술관 소장품의 수준을 결정하는 작가이기도 하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또 다른 주인공은 진주이다. 그는 진정으로 진주를 사랑한 남자였다. 그 진주 사랑의 정점이 ‘진주귀걸이를 한 소녀’다

누구의 부름을 받았을까. 이국적인 터번을 두르고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과 은밀한 얘기를 하려는 듯 살짝 벌어진 입술! 지극히 고요하면서도 매혹적이다. 현재 그녀가 ‘살고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의 마우리츠하위스 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작품 앞에서 걸어 볼 것을 권한다. 우리가 어디를 가든 그녀의 시선은 우리를 따라오는 특이한 체험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 조그만 얼굴은 4계절의 감정이 모두 들어앉아 있는 듯 신비로워 보면 볼수록 빠져들게 된다. 특히 터번과 얼굴 사이에서 슈퍼문처럼 빛을 발하고 있는 진주귀걸이는 신비감을 더욱 고조시킨다. 이 그림으로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소설을 써서 300만 부를 판매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어 2003년에 제작된 영화는 이 작품의 위치를 더욱 높이 올려놓았다. 매년 페르메이르 작품을 보기 위해 세계 곳곳의 미술관을 찾아다니는 ‘페르메이르 순례객’이 적지 않다. 특히 일본 사람들의 페르메이르 사랑은 대단해서 그의 전시는 언제나 수백만 명의 관람객을 동원한다. 이는 늘 고공 행진을 하는 우리에게 긴 쉼표를 안겨주기 때문일 것이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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