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원의 명화를 빛낸 장신구]경건함을 돋보이게 하는 장신구의 향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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얀 반 에이크作 ‘헨트 제단화: 양에 대한 경배’
얀 반 에이크作 ‘헨트 제단화: 양에 대한 경배’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헨트 시의 바보(Bavo) 성당은 세계 각지에서 수많은 ‘명화 순례객’들이 꼭 찾는 곳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단화이자 반 에이크의 최대 걸작인 ‘양에 대한 경배’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그는 폭발할 듯이 현란한 색채, 사각거리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옷감의 생생함, 광대하게 펼쳐진 자연풍경, 멀리 보이는 건물의 창과 그 내부까지 묘사한 세밀함, 핀 떨어지는 소리까지 들릴 듯한 절대 정적 등 플랑드르 회화의 모든 특징을 넘쳐흐를 만큼 빽빽하게 담아냈다. 이 작품과 대면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 신비로운 힘이 이 작품을 탄생시켰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양에 대한 경배’는 접었을 때 8면, 열었을 때 12면으로 총 20개의 패널로 된 다폭 제단화다. 하느님, 성모마리아, 사도 요한이 중앙에 자리하고 좌우로 노래하는 천사와 악기를 연주하는 천사, 그리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과 하와가 당황한 모습으로 서 있다. 하단의 중앙 성배에 떨어지는 양의 피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예수님의 희생을 상징한다. 수난의 상징을 든 천사들이 둘러싸고 있고 성직자와 교황, 순례자, 성인들, 유대민족의 통치자들이 모두 양에게 경배를 드리기 위해 걸어오고 있다.

이 제단화를 자세히 보면 반 에이크는 머리부터 눈, 손 등 전신에 현미경을 장착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그러지 않고서는 사진보다 더 세밀한 묘사가 어찌 가능했을까.

하느님을 비롯해서 모든 등장인물은 자신의 영적 세계를 드러내는 장신구를 했다. 반 에이크는 장신구의 기능을 확장해 천상의 빛을 재현하는 매체로 격상시켜 특수효과를 이끌어 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신구는 우주의 모든 빛을 응축하고 있는 듯 성스럽고 화려하다. 하느님, 성모, 천사들 모두 알사탕처럼 큰 진주, 사파이어, 루비 등의 보석이 박힌 왕관을 쓰고 있는데 하나도 같은 디자인이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마치 장신구의 뷔페 상을 차려놓은 듯 장신구의 대향연이 벌어지고 있다.

반 에이크는 유화의 발명가로도 알려졌지만 사실은 유화의 특성을 가장 잘 활용해서 풍요로운 색채, 섬세한 입체감, 사물의 질감을 생생하고 완벽하게 구현해 냈다. 이 제단화는 반 에이크가 우리의 가슴에 새겨준 한 편의 대서사시다.

이강원 세계장신구박물관장·시인
#얀 반 에이크#헨트 제단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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