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물고기, 접시에 통째로 올라온 도다리 튀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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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옆 식도락]⑤삼성미술관 리움 ‘교감’전, 스파이시바이트 ‘생강칠리생선튀김’

삼성미술관 리움의 15∼16세기 조선 분청사기철화 물고기무늬 단지(왼쪽 사진). 백토를 바른 뒤 검은 안료로 연꽃과 물고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오른쪽은 인근 식당 스파이시 바이트의 생강소스 도다리튀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삼성미술관 리움의 15∼16세기 조선 분청사기철화 물고기무늬 단지(왼쪽 사진). 백토를 바른 뒤 검은 안료로 연꽃과 물고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오른쪽은 인근 식당 스파이시 바이트의 생강소스 도다리튀김.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지난해 10월 서울 용산구 삼성미술관 리움 인근에 간판 없는 조그만 식당 하나가 문을 열었다. ‘태국음식 파는 식당 같긴 한데….’ 창밖에서 얼추 분위기를 짐작하고 과감히 문을 열고 들어와 자리에 앉았던 손님 중 태반이 머쓱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똠얌꿍(태국식 수프)? 팔지 않습니다.”

똠얌꿍과 팟타이(태국식 볶음국수) 없는 태국음식점이라니. 주방장 겸 사장 송용성 씨(38)는 “내가 싫어해서 안 만들었다”고 했다. 2명이 나란히 서기도 빡빡한 주방 앞 홀에는 테이블 5개만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인테리어는 흰 페인트칠이 전부였다.

서울대 미대 조소과 출신의 송 사장은 차별화된 재료에만 온 신경을 쏟았다. 셜롯(적양파), 고추, 마늘, 심황(커리용 향신료)을 일일이 다지고 빻아 코코넛크림을 더해 수제 그린 커리를 만들었다. 겨울에는 20시간 삶은 소 볼살 찜과 으깬 녹두코코넛을 스페셜 메뉴로 냈다. 고고한 ‘품질 외길’의 결과는 어땠을까.

“전혀 안 먹혔죠. 건방지게 내가 만들고 싶은 것만 팔았으니까요. 손님이 먹고 싶어 하는 걸 내놓지 않고.”

6개월 만에 문 닫을 위기를 겪은 뒤 ‘스파이시 바이트’(070-4028-8011)라는 간판을 달고 실내를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차림표에는 똠얌꿍과 팟타이를 넣었다. 수제 커리는 단념했다. 하지만 가게 벽 흑판에 적힌 스페셜 메뉴는 여전히 태국 전통음식이 아니다. 동남아와 중국 요리에 쓰는 향신료와 서구 요리 기술을 조합한 어떤 것. 깊이 없고 근본 없다 손가락질 받을 수 있지만 균형 잡힌 맛의 무언가가 이곳의 메인 메뉴다.

큰길 건너 리움의 메인 메뉴는 뭘까. 데이미언 허스트일까, 아이웨이웨이일까, 이우환일까. 아니면 건물을 설계한 장 누벨, 마리오 보타, 렘 콜하스의 희미한 흔적일까. 21일까지 열리는 개관 10주년 기념전 ‘교감’전은 서로 맞닿는 지점이 얼핏 전혀 없을 듯한 덩어리들을 억지스러운 기색 없이 이어 엮은 기획의 솜씨가 어떤 개별 작품보다 돋보이는 전시다.

송 사장은 2004년부터 10년간 호주에서 유럽과 태국 요리를 배웠다. 요리학교 졸업 후 주방을 경험한 시드니 ‘세일러스 타이’는 호주의 스타 태국요리 셰프 데이비드 톰프슨의 레스토랑이다. 도다리 한 마리를 통째로 튀겨낸 뒤 간장 설탕 식초 생강 마늘 고추 향신료를 섞은 소스를 졸여 얹은 접시가 12월의 스파이시 바이트 스페셜이다. 당도 낮은 화이트와인과 착 맞아떨어진다. 요리의 국적? 알게 뭔가. 문제는 오직 밸런스다.

15∼16세기 조선의 분청사기철화 어문 호(壺·보물 787호)는 리움 1전시실 3층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조각상을 마주보고 있다. 유유히 헤엄치는 이 물고기 그림을 튀긴 도다리 접시와 나란히 놓고 보는 것은 얕은 수의 저속한 불경일까. 리움이라는 공간의 미덕은 경계 흩뜨린 온갖 것을 잘 섞음으로써 낮춘 눈높이에 있다. 북적이는 주말 풍경은 그 밸런스의 유효함을 증명한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삼성미술관#리움#교감전#스파이시바이트#생강칠리생선튀김#똠얌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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