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好통/조종엽]문화재 지정번호, 꼭 있어야 하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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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엽 기자
조종엽 기자
문화재에 서열이 있을까?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국보와 보물을 보자. 유형문화재 중에서 역사 학술 예술 기술적 가치가 큰 것을 보물로 지정한다. 보물 중에서 가치가 높은 것을 국보로 지정한다. 더 희귀하고, 아름답고, 오래되고, 대표적이거나 특이하고, 역사적 의미와 관련된 것 등을 기준으로 보물과 국보의 가치는 엄연히 차등을 둔다.

문화재 서열이 없다는 건 두 가지 의미다. 국보의 지정 번호는 말 그대로 지정한 순서지 서열이 아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70호라고 가치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1호로 바꾼다고 높아지는 것도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문화재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의 한계다. 우리가 우수하다고 생각하는 문화재를 후손들은 달리 볼 수 있고, 별로라고 여겼던 것도 후대에는 문화재로 평가받을 수 있다. 서구적 근대화를 우선시했던 시대에는 전통적 농기구나 어구가 낙후나 저발전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나 최근 생태적, 순환적 생산방식을 보여 주는 문화재로 존중받고 있는 것이 그렇다. 문화재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불가피한 면이 있지만 평가 기준 자체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상대적이라는 점을 항상 염두에 둬야 한다.

동아일보가 2일 “‘국보 1호 바꾸자’ 주장에 ‘문화재에 서열 있나’ 반론” 기사를 보도하자 인터넷 기사에 800개 가까운 댓글이 달렸다. 국보 1호 교체가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1호’의 상징성이 있으므로 교체를 고려할 만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해가 간다. 2008년 수습기자 시절 숭례문 현판이 불길에 휩싸인 채 땅에 떨어지는 것을 현장에서 봤다. 이후 복원도 부실 논란이 일었다. 조선총독부가 숭례문을 ‘고적 1호’로 정했다는 것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국보 1호 교체 주장에 대한 동의는 문화재에 평소 관심을 갖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온다.

하지만 그것도 모두 역사다. 숭례문을 국보 70호로 바꾸거나 국보에서 빼 버린다고 한들 역사는 변함없다.

소모적인 논쟁을 되풀이하느니 차제에 문화재 지정 번호를 내부 관리용 번호로만 사용하고 외부적으로는 밝히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교과서와 안내판, 홍보 책자 등을 고쳐야 하기 때문에 돈이 적지 않게 든다. 그러나 당장 다 고치려 들 게 아니라 교체할 시기가 왔을 때 번호만 지워 비용을 최소화하면 된다. 문화재청은 ‘국보 1호 교체 입법청원으로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고 손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 이 기회에 자체 방침을 빨리 정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문화재#서열#국보#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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