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伊 관현악 거장 레스피기가 인용한 오래된 선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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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관현악 거장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사진)는 ‘소리로 로마를 그려낸 풍경화가’로 불립니다. 교향시 3부작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 덕분이죠. 로마의 경치와 문화유산을 담아낸 곡들을 듣고 있으면 ‘영원의 도시’ 로마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1924년 발표한 ‘로마의 소나무’ 첫 번째 악장은 ‘빌라 보르게세의 소나무’입니다. 로마 중심가에서 북쪽에 있는 ‘빌라 보르게세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뛰어노는 듯 소란스러운 음향이 이어지더니, 이내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천진한 멜로디가 따라옵니다. ‘도 미파 솔 라 솔 미파 솔 라 솔….’

이 선율을 알고 있던 중 레스피기의 모음곡 ‘새’(1928년)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첫 악장 ‘전주곡’ 첫 부분에 똑같은 멜로디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A장조로 음높이도 같습니다.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얼핏 들렸다가 이내 사라지는 선율이지만, ‘새’에서는 작품 시작부터 당당하게 행진곡처럼 울려 퍼집니다.

왜 레스피기는 두 작품에 똑같은 선율을 썼을까요? 사실 이 멜로디는 레스피기가 지은 것이 아니라 두 세기 앞선 작곡가 베르나르도 파스퀴니(1637∼1710)의 ‘두 아리아’라는 작품에 나오는 선율입니다. 레스피기는 옛 악보를 깊이 연구하는 음악문헌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작곡가들이 쓴 선율을 편곡해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넣기를 즐겼죠. 물론 원작곡자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새’ 모음곡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들의 선율을 편곡해서 뻐꾸기, 나이팅게일, 비둘기의 울음소리로 묘사해낸 작품입니다. 다만 먼저 발표한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이 선율이 파스퀴니 작품의 인용이라는 점을 악보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어라. 이 오래된 선율을 통해 로마의 오랜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라는 생각이었을 듯합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달 9,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티에리 피셔 지휘로 열리는 ‘티에리 피셔와 르노 카퓌송, 꿈’ 콘서트에서 ‘로마의 소나무’ 1, 4악장을 연주합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토리노 레스피기#이탈리아 관현악 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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