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차이콥스키의 첫 교향곡 ‘겨울날의 환상’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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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2년, 러시아 역사상 첫 음악원이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3년 뒤 열린 첫 졸업식에서 최고상을 받은 학생은 법무 공무원으로 일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사표를 낸 남자로,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약간 많은 24세였습니다. 음악원장의 동생이 모스크바에도 음악원을 열자 그는 새 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사진)의 모스크바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연고가 없던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원장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살기 시작했습니다. 큰 방을 얇은 판자로 막은 공간이어서 옆방 루빈시테인 원장이 기침하는 소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원장은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차이콥스키는 타고난 소심함 때문에 숨을 죽이며 이곳에서 첫 번째 교향곡을 악보 위에 사각사각 써 나갔습니다. 교향곡 1번 G단조 ‘겨울날의 환상’(1866년)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곡을 ‘차이콥스키의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명곡’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주제 선율의 전개에 미숙함이 보인다거나, 장황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세상에 새로 나온 작곡가의 가슴 설레는 풋풋함이 있습니다. ‘겨울 여행의 몽상’이라는 제목이 있는 1악장, ‘음산한 땅, 안개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구슬픈 서정을 노래하는 2악장, 훗날 차이콥스키의 발레곡을 연상하게 하는 3악장, 밝고 역동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듯한 4악장 모두 처음 듣는 사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1악장은 장난감들의 전쟁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룬 영화 ‘토이즈’ 시작 부분에 쓰여 세계 영화팬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나간 일은 ‘리셋’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지난 실수를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는 있겠습니다. 모든 이에게 세상이 ‘안녕? 올해는 처음이지?’라고 인사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희망과 함께하는 계절에 풋풋한 차이콥스키의 첫 교향곡을 들으며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차이콥스키#차이콥스키 첫 교향곡#겨울날의 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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