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이 한줄]웹툰 ‘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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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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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 “아버지라는 것들은 말이야…. 외롭다거나 힘들다는 말 같은 거.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고, 할 필요도 없거든.”

―웹툰 ‘덴마’(에피소드 ‘파마나의 개’) 중에서

뜬금없이 걸려온 한 후배의 전화.

“선배, 대마초 어떻게 생각해.”

“글쎄, 중독성은 없다지만 좋진 않지. 불법이기도 하고.”

오랜만에 진지했건만. 이 녀석, 숨이 넘어가도록 깔깔댄다.

“마초(macho) 물어봤더니 뭐라고? 하긴, 것도 심하면 법에 걸리려나. ‘쩐다(심하다·대단하다는 뜻)’, 형.”

이런 젠장.

덴마는 마초 만화다. 그것도 대(大)마초다.

소재만 봐도 그렇다. 지금까지 11개의 에피소드 중 ‘만드라고라’ 외엔 모두 남성이 주인공. 인조인간 ‘이브 라헬’을 여성으로 분류해도 꽤 지독한 성비 불균형이다.

게다가 이놈들, ‘똘끼’가 장난 아니다. 신념 위해 어떤 굴욕도 견디고(야엘 로드), 죽음으로 여동생을 보호한다(샤보이 가알). 목숨 던져 아내 유해를 지키는가 하면(마리오네트), 가족을 살리려 인생을 내던진다(해적선장 하독). ‘통합챔피언’(주인공) 덴마 역시 사랑에 죽고 산다.

그 극(極)엔 ‘식스틴’ 이델이 있다. 첫눈에 반한 사랑. 넬을 위해 온몸을 불사른다. 그가 벌인 범법행위를 읊어보자. 스토킹은 기본이고 사기와 납치, 해킹에 탈옥에…. 심지어 살인까지. O J 심슨의 변호사라도 잘해야 무기징역. 게다가 애인을 찾아 300만 구가 넘는 시체더미를 홀로 뒤지다니. 뭐, 이런….

근데 이 양반들, 묘하게 가슴을 후벼 판다. 얼토당토않은데, 현실성 제론데. 만화라도 심하다 싶다가도 다시 보기를 누른다. “누군가에게 네 모든 걸 걸어본 적 있나.” 깊은 밤 불쑥 뱉던 어느 시인의 주정. 묘하게 중첩되며 회상에 잠겨본다. 순수하고 당당하게. 그땐 그랬노라 가슴 펼 시절이 있던가.

사실 양영순 작가의 ‘마초 찬송가’는 전부터 그래왔다. 데뷔작 ‘누들누드’나 ‘아색기가’의 성(性)스러운 잔상이 크긴 해도, 줄곧 이어진 남성상이 존재했다. 무뚝뚝한 말 주변, 거친 언행. 이 때문에 빚어지는 갖은 오해와 굴곡. 그 삶에 내던져진 자식이자 아버지인 사내는 속내에 피가 맺혀도 눈물 한 방울 못 흘리고. ‘천일야화’ ‘플루타크 영웅전’ 등을 관통하며, 작가는 마초가 “마초일 수밖에 없었던” 서사를 켜켜이 쌓아간다.

에피소드 ‘피기어’를 보자. 돼지 같은 몸매에 흉물스러운 외모. 이 냄새나는 짐승 떼는 종일 땅만 파먹는다. 누가 때리면 꼼짝없이 맞는다. 암컷을 뺏기는데 대들지도 못한다. 온갖 구박과 멸시. 죽음마저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미물. 그러나 결코 건드려선 안 될 금기. 자식(새끼)을 건드리면 처절하게 복수한다. 그 우둔하지만 넓은 등짝으로. 부러진 발목을 끝내 일으켜 세운다.

“수컷 피기어들을 보고 있노라면, 무력했던 한 남자가 떠올라요. 지켜야 할 것을 위해 한없이 무력해야만 했던…. 전 그 남자의 등을 보고 자랐거든요.”(피기어 대사 중에서)

양 작가의 마초는 람보가 아니다. 슈퍼맨처럼 근사하지도, 제이슨 본 같은 세련미도 없다. 가끔 어쭙잖게 거들먹거려도, 그 역시 나약한 자기방어일 뿐. 보통은 침묵하고 대부분 인내한다. 젊은 꿈은 가슴에 묻어둔 채. 오늘도 나아가 땅을 판다. 답답하고 지겹도록.

물론 이 세상 사내들, 다 괜찮진 않다. 찌질 군상도 꽤 많다. 하지만 한번쯤 돌이켜보자. 오늘도 술에 취해 문간서 뻗는 그 ‘웬수’. 혹 그가 마신 건 시름이 아니었는지. 한숨 한번 맘껏 내뱉지 못해 들이켠 건 아닌지…. 마초는 참 별로다. 하지만 대마초 취급은 하지 말길.

“He deserves it(그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ray@donga.com  

레이
동아일보 기자. 문화부와 국제부 등 근무.  

덴마
포털사이트 네이버 웹툰. 지난해 1월 8일부터 주 3회 연재 중. 대문에 ‘특수능력을 지닌 악당 덴마가 꼬마의 몸에 갇혀 우주택배 업무를 하며 겪는 기상천외한 모험이야기’라고 적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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