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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5>‘츄리닝’의 이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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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릴레이 인터뷰]<5>‘츄리닝’의 이상신

동아닷컴입력 2009-11-25 21:29수정 2010-04-27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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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오열했다.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었다.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아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지.'

고개 숙여 꺽꺽 울던 그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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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에게 얘기해서 그거 건드리지 말고 그대로 있어 달라고 해줘. 부탁이야."

다행히 주위에 모여 있던 30여 명은 친구의 말을 들어줬고, 10여분 후 그가 다시 그 장소에 갔을 때 물건은 그대로 있었다.

그는 팔을 번쩍 치켜들고 "만세"를 불렀다.

스포츠동아 인기 연재만화 '츄리닝'의 이상신 작가(33)는 그때 다음과 같은 교훈을 얻었다.

'남자는 태어나서 세 번 운다. 한 번은 태어날 때, 한번은 부모님 돌아가실 때, 한 번은 아이템 얻으려다가 컴퓨터 다운됐을 때.'

●'리스크 사절'

이 작가가 울다 웃은 그 날은 게임에 중독돼 3개월 여간 밤에 잠을 안자고 온라인 게임에 매달리던 시절이었다.

사막에서 다른 게이머 30여 명과 힘을 합쳐 괴물을 물리치자 좀처럼 얻기 힘든 아이템이 나타났다. 마침 괴물 옆에 서 있던 이 작가는 아이템을 획득하기 위해 바로 옆까지 갔으나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됐다.

"으악!"

자신도 모르게 비명과 함께 울음이 터져 나왔고 함께 게임에 접속해 있던 친구에게 엉엉 울면서 전화했다. 전화를 받은 친구가 온라인상의 다른 게이머들에게 아이템을 갖지 말아달라고 부탁했고 마음 좋은 게이머들은 친구의 부탁을 들어줬던 것.

이 날이 이 작가가 기억하는 인생의 가장 슬픈 순간이다. 그날 일만 빼면 그의 인생에서 굴곡이란 없었다.

아버지 공사(公社) 직원, 큰아버지 공사 직원, 동생도 공사 직원, 사촌 형은 건설회사 직원….

어려서부터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나중에 커서 큰 인물 될 생각 말아라. 우리 가족 피에 리스크(Risk)는 안 섞여 있다. 야망을 크게 갖지 말고 무조건 안정적인 삶을 살아라,"

이 작가는 13살이던 1989년 개봉한 영화 '모던타임즈'를 극장에서 봤다.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이 공업화 사회의 인간소외를 논할 때 그는 속으로 결심했다.

'그래, 나도 나중에 커서 컨베이어 벨트 앞에서 나사 조이는 단순한 일을 할 거야!'

지하철을 타고 집에 오면서는 플랫폼에 서서 사람들 안전선 넘나 안 넘나 감시하는 역무원을 부러운 시선으로 한참이나 쳐다봤다.

집에 와서는 경비실에서 책을 펴 놓고 꾸벅 꾸벅 조는 경비아저씨를 보면서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경비원이 돼야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톨게이트 면제차로 요금 징수원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만화가를 꿈 꾼 이유

‘츄리닝’ 이상신.
이런 그는 고등학교 때 만화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다른 사업은 자본이 들어가잖아요. 하지만 만화가는 잘 안 돼서 망해도 종이 값만 손해 보면 되잖아요."

그렇게 열심히 해서 공주대 만화학과에 수석 합격했다.

당시에는 만화를 배울 수 있는 학과는 공주대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고향은 서울인데 학교가 너무 멀었다. 또 친한 동네 친구들이 죄다 대학에 떨어져 재수 학원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었다. 대학에 간 이 작가만 '왕따'되는 묘한 분위기도 형성됐다.

"엄마, 저 재수해서 다른 학교 갈래요."

오로지 친구들과 놀기 위해 그는 재수를 선택했다. 공주대학교는 너무 멀다는 점에서 '리스키'(Risky)했다.

그의 인생의 황금기는 그때 시작됐다.

정확히 1994년 12월부터 1995년 10월까지 11개월간 친구들과 놀기만 했다.

학원앞 카페에서 1000원짜리 커피 한잔씩 시켜놓고 오전 내내 수다 떨고 놀다가 지루하면 바로 옆 오락실로 자리를 옮겨 격투기에 열중했다. 그해 개봉한 영화는 하나도 안 빼고 다 봤다.

필요한 돈은 학원비로 충당했다.

●"죽여버릴테야!"

당시 오락실에서 가장 인기 있었던 게임은 '킹 오브 파이터스'였다.

킹 오브 파이터스는 오락실내 같은 게임기에 앉은 사람끼리 대결을 할 수 있는 일종의 '네트워크' 게임이였다.

이 작가는 오락도 자기 스타일로 했다. 그는 절대로 KO로 이겨본 적이 없다. 가장 '얇실한' 캐릭터를 고른 뒤 '다다다다닥…' 주먹으로 때리는 버튼을 여러 번 눌러 상대방을 몇 대 때린 뒤부터는 도망 다니며 시간을 끌었다.

30판정도 그렇게 이기다가 한번 지면 미련 없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한 판 더 하고 싶어진 '30번 지고 한번 이긴' 상대방은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얇실한 그와 달리 당시 오락실의 지존으로 통했던 친구는 그러지 못했다.

단 한 번도 져 본 적 없는 친구의 맞은편 게임기에 어느 날 한 빼빼마른 중학생이 앉아 동전을 넣었다. 그리고 지존인 친구는 한 대도 때려 보지 못하고 중학생에게 얻어 터져 KO패 당했다.

"우와~"

등 위에서 구경하던 친구들이 환호성을 지르자 친구는 "어쩌다 한번 진 걸 갖고 뭘 그래"하며 애써 미소 지어 보였다.

그러나 두 판, 세 판… 내리 열판을 지자 친구는 벌떡 일어나서 중학생에게 달려들었다.

"저 자식 죽여버릴테야!"

친구들이 그를 뜯어 말리는 사이 중학생은 한쪽 입 꼬리만 올리고 '썩소'를 날리며 유유히 오락실에서 사라졌다. 친구의 뺨에는 줄줄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남자가 울어야 할 때가 하나 더 추가됐다.

오락실에서 '중딩'한테 졌을 때.

●모든 게 만화의 소재

큰 사고 안 치고, 술 안 마시고 노름 안 하고 기껏해야 친구가 중학생과 시비 붙을 뻔하며 보낸 그의 재수시절은 지금 작품생활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아색기가', '트라우마' 류의 반전 코믹 만화인 '츄리닝'은 이 작가가 살면서 겪은, 결코 대단하지 않지만 곱씹어보면 웃음 짓게 만드는 일상 속 코믹한 에피소드와 통념을 뒤엎는 발칙한 상상력이 버무려져 있다.

10대 후반과 20대 겁 없고 철없던 젊은 시절 에피소드 위주인 '츄리닝'에는 이 시기에 빼 놓을 수 없는 군대 얘기도 빠지지 않는다.

만화에 소개된 실화 하나.

어느 날 소대장이 내무반에 나타나 소대원들에게 지시한다.

"이번 전투 체육의 날에 우리 소대가 외칠 구호를 정해라."

소대원들은 "필승" "충성" 등 뻔한 아이디어를 내 놓는다. 그러자 "식상하다"며 한 소대원이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로 정하자고 얘기한다.

"대단하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동료들의 칭찬이 이어지는 가운데 한 소대원이 이의를 제기한다.

"군대에서는 '요'자 붙이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잠시 후 소대장이 와서 정한 구호를 외쳐 보라고 지시하자 소대원은 자신 있게 이렇게 외친다.

"우리는 공산당이 싫지 말입니다!"

●온라인에서 스포츠동아로

11개월 신나게 놀고 그가 96학번으로 입학한 곳은 세종대 만화 애니메이션 학과. 공주대를 포기하고 노는 동안 세종대 상명대 등 '가까운' 대학에 만화 관련 학과가 신설됐다.

군 제대후 2001년부터는 '아색기가'의 양영순 작가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양 작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코믹 만화를 추천해주면서 당시 같은 과 1년 후배였던 국중록(33) 작가와 공동 작업할 것을 권했다.

'졸업하고 나면 마음이 급하니까 미리부터 경험해보자'며 4학년 때 '츄리닝'을 그렸다. 스토리와 구도를 이 작가가 정하면 작화와 채색은 그림체 예쁜 국작가가 담당하는 식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어차피 안 될 거, 그냥 경험삼아 내보자"며 딱 한군데 신문사 사이트 '스투닷컴'에 원고를 보냈다. "그냥 내 보는 경험만 하는 거잖아." 서로를 위로하며 대답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덜커덕, "주 2회 연재하자"고 신문사에서 연락이 왔다.

2003년 당시는 인터넷 연재만화가 막 인기를 끌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때를 잘 타기도 했지만 마침 스투 닷컴에 연재하던 다른 만화가가 사정이 생겨 연재를 중단하는 바람에 급히 다른 작품이 필요했다. 별 기대하지 않았던 작품이 절묘한 시기에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대학 4학년 때 온라인으로 연재를 시작한 츄리닝은 7년째 인기가 식지 않으며 지금은 스포츠동아에서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하면 다 되는 인생?' '공무원 만화가?'

그는 결혼도 중매로 했다.

친구들은 "너 같이 멋대가리 없고, 잘생기지도 못한 놈이 장가를 갈 수나 있겠냐"며 그를 놀렸었다.

그러나 그는 중매에서 '퀸카'를 만나 지금도 자타가 인정하는 가장 아름다운 부인을 모시고 살고 있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어머니가 대신 접수해 분양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원고료 수입으로 꼬박꼬박 중도금을 내고 나니 집값이 몇 배 뛰어 있었다.

원고료 수준으로만 보면 그 보다 훨씬 많이 받는 작가들이 많지만 자산으로 따지면 웹툰 작가 중에서 단연 세 손가락 안에 든다는 게 동료들의 설명이다.

놀다 보니 대학가고, 큰 계획 없이 만든 작품으로 데뷔하고, 소개팅에 나가보니 '퀸카'가 나와 앉아 있고, 중도금 내고 보니 집값이 껑충 뛰고….

마음먹은 대로, 때로는 마음먹지 않아도 일이 잘 풀리는 부러운 인생 같지만 그의 진면모를 아는 사람은 그를 질투하지 않는다.

2005년경, 국작가와 한 다세대 주택 2층에서 같이 살던 시절. 어느 날 밤 하수구가 역류해 3층에서 버린 물이 마루에 가득 찼다.

3층 사람에게 불평을 하거나 외출해 있던 국 작가를 급히 불러들일 만했지만 이 작가는 잠을 자지 않고 밤새 물을 퍼냈다.

무슨 일이건 한번 시작하면 끝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 재수시절에도 학력고사 한 달 전 부터는 무섭게 공부에 매달렸다. 아이템 얻으려다 눈물 흘린 것도 온라인 게임에 중독 되다 시피 열중하다 생긴 일이었다.

끝장볼 때까지 무섭게 열중하는 신세대 작가 이상신. 이 작가 앞에서 건성으로 살며 심각한척 무게 잡는 기성세대는 권위를 세우기 힘들다.

후속작품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인생의 목표가 모던 타임즈의 찰리 채플린, 역무원, 경비원이잖아요. 사실 거창한 계획은 없어요. 꾸준히 원고료가 들어올 수 있도록 무조건 사람들이 좋아할 작품을 그때그때 구상해야죠."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다.

"사실은 스포츠 동아가 더더욱 번창해서 영원히 스포츠동아에 그리고 싶어요. 이건 기사에 쓰지 말아주세요."

나성엽 기자 cp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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