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 한여름 원기회복, 네가 있어 반갑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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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7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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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삼탕(鷄蔘湯)


‘흔히 삼계탕이라 하지만, 계삼탕이 맞는 말이다. 닭이 주재료이고 인삼은 부재료인 까닭이다. 이렇게 음식이름을 바로잡아 놓고 보면 이 음식 맛의 중심이 보인다. 주재료인 닭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이다. … 인삼은 달고 씁쓰레한 맛을 낸다. 향이 강한 재료이므로 닭과 섞으면 인삼이 이긴다. 내 생각에는 인삼보다는 황기가 닭과 더 잘 어울린다. 100일 정도 키운 토종닭에 황기 서너 뿌리 넣고 푹 고면 닭의 진미를 느낄 수 있다.’
<황교익의 ‘미각의 제국’에서>

그렇다. 계삼탕(鷄蔘湯·Chicken Ginseng Soup)은 결국 무슨 닭을 쓰느냐에 달려있다. 아무리 값비싼 산삼을 넣으면 뭐하나. 닭이 엉터리라면 ‘말짱 황’이다. 옻 엄나무 영지버섯 등 별별 것을 다 넣어도 그건 마찬가지이다.

계삼탕의 닭은 보통 500g 정도 되는 영계를 쓴다. 머리와 꼬리 내장을 빼면 한 350g 정도나 될까? 그 빈 뱃속에 밤, 인삼, 대추, 마늘, 생강, 황기, 오가피, 은행, 불린 찹쌀 따위를 넣고 푹 곤다.

옛날 시골 약병아리는 겨우내 서너 달(100∼120일)은 키워야 500g 정도가 됐다. 요즘 일부 닭 공장에선 빠르면 20일 만에도 뚝딱 만들어낸다. 그런 병아리들은 항생제와 성장호르몬이 들어있는 사료를 먹고 큰다. 24시간 환하게 불이 켜진 비좁은 닭장에서 운동도 제대로 못하며 살만 덕지덕지 붙는다.

이런 닭을 넣은 삼계탕은 20분 이상 끓이면 흐물흐물 다 녹아버린다. 고기도 퍽퍽하고, 마치 푸석한 두부를 먹는 것 같다. 국물은 깊은 맛이 없고 느끼하다. 뼛속은 텅 비어 ‘골즙’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뼈는 과자처럼 바스라진다.

좋은 약병아리는 적어도 센 불에 1시간 이상 끓여야 한다. 그래도 육질이 쫄깃하다. 국물은 시원하고 담백하며, 뼈즙이 우러나와 고소하다. 뼈를 분질러 보면 속에 새카만 골수가 꽉 차있다.

요즘 서울시내 내로라 하는 계삼탕집에선 대부분 49일정도 키운 수평아리(웅추·雄雛)를 쓴다. 기름이 적고 씹는 맛이 있다. 덩치도 암평아리보다 크다. 옛날에도 계삼탕에 수평아리를 썼지만, 그땐 암평아리를 씨암탉 감으로 따로 골라놓느라 그런 것이다. 보통 오래된 계삼탕전문점에선 생산 농가와 직거래를 하거나 아예 직영농장에서 닭을 키운다.

서울 서소문 옛 배재고등학교 입구에 있는 고려삼계탕(02-752-9376)은 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이곳은 전문농장에 위탁해 웅추를 사육한다. 서울 명동 코리아극장 위쪽에 있는 백제삼계탕(02-776-3267)은 매일 직영농장에서 도축한 계육을 쓴다. 일본 관광객들의 발길이 붐빈다. 역시 직영농장을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 체부동의 토속촌(02-737-7444)도 맛이 남다르다.

서울강남 관세청 사거리의 논현삼계탕(02-3444-5510), 중구 태평로 플라자호텔 뒤쪽의 장안삼계탕(02-753-5834), 들깨삼계탕으로 이름난 영등포 신길동의 호수삼계탕(02-848-2440). 서울성곽길 성북동의 성너머집(02-764-8571), 여의도 파낙스(02-780-9037), 전기구이통닭 원조로 유명한 충무로 영양센터(02-776-2015), 흑석동 중대병원 지하의 고려한방삼계탕(02-6332-3434)도 마니아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한방에서 닭은 따뜻한 성질을 지닌 식품이다. 반대로 오리는 찬 성질을 갖고 있다. 따뜻한 닭에 인삼 황기 마늘 대추 등을 넣고 끓이면 더 뜨거운 식품이 된다. 옻나무나 호박 등을 넣으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이열치열(以熱治熱)인 것이다.

닭고기는 지방은 적고 단백질이 많다. 칼로리가 낮은 대신 영양가가 높다. 흔히 닭똥집이라고 부르는 모래주머니는 근육질로 단백질이 대부분이다. 연탄불에 구워 소금장에 찍어 먹으면 오도독거리며 씹는 맛이 좋다. 닭발은 양념고추장에 버무려 연탄불에 구워먹었다. 눈 오는 날, 포장마차에서 화장지로 닭발을 둘둘 감아들고 소주 안주로 먹었다. 유독 닭껍질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닭 껍질엔 콜레스테롤이 많다.

닭가슴살은 단백질 덩어리이다. 보디빌더나 마라토너들이 즐겨 먹는다. 맛소금에 찍어 먹는다. 소화가 잘돼 어린이와 노인들에게 좋다. 남도에선 닭을 육회로도 먹는다. 대부분 안심살을 먹는데, 그것은 가슴살보다 더 안쪽에 붙어있다. 닭 육회는 쇠고기 육회처럼 양념을 해서 먹거나 그대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다. 날 비린내와 함께 물렁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난다.

요즘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에선 ‘무항생제 토종닭’이 화두다. 저마다 ‘값이 좀 비싸더라도 무공해 닭’을 선보이려 애쓴다. 과연 어느 것이 토종닭인가. 소비자들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갤러리아백화점 명품관과 현대백화점에 토종닭을 납품하는 정태한 마령생명영농법인 대표(54)는 말한다.

“120일 정도 키운 약병아리 토종계삼탕은 적어도 센 불에 1시간10분은 푹 고아야 한다. 조선 닭은 발과 발목이 모두 녹두 빛이다. 등과 머리가 이루는 각이 90도로 곧다. 벼슬도 한여름 맨드라미처럼 선명하고 팥죽처럼 짙다. 기름이 자르르 흐르고, 보기만 해도 예쁘다.”

정 대표는 현재 전북 진안군의 마령농장 53만 평에 7000여 마리의 조선 닭을 옛날 촌닭처럼 키운다. 항생제나 방부제는 일절 안 쓴다. 한약재 쌀겨 참숯 국산콩 옥수수 풀 조개껍질 싸라기 등만 먹인다. 농협중앙회축산사료연구소 잔류검사결과 항생제 방부제 성장촉진제 등 6가지가 모두 제로다. 그는 최근 서울 강남사거리에 ‘URBY’(070-8956-8005)라는 서울사무실을 열었다. 토종닭 삼계탕을 시식해 볼 수 있다(전화 예약).

삼계탕은 무더운 복날음식이다. 허기지고 힘이 없을 때 먹는 복달임이다. 사람들은 그것을 먹고 힘을 추스른다. 남자들은 수평아리의 이루지 못한 꿈을 생각한다. 아득히 먼 옛날, 창공을 훨훨 날았던 ‘지워진 기억’을 되살려낸다.

수탉은 왜 홰를 탁탁 치면서 우는가? 그것은 저 푸른 하늘을 훨훨 날기 위한 비상의 꿈이다. 이륙을 위한 몸부림이다. 수탉은 왜 자꾸 볏을 흔드는가? 그것은 ‘그른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니다’라는 표시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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