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별난 교수의 별별 기생충 이야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서민의 기생충열전/서민 지음/332쪽·1만5000원/을유문화사

책장을 넘길 때마다 항문이 가렵다. 박박 긁을까 하다가 주저한다. 항문 밖을 빠져나온 요충은 1만 개가 넘는 알을 뿌린단다. 손으로 긁으면 기생충 알이 손가락 끝에 묻어난다고 하니 상상만으로 몸서리쳐진다.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인 저자는 기생충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낸다. 기생충은 과학범죄 수사물의 범인처럼 등장한다. 25세 남자가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열이 나고 배가 아프고 설사가 이어지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었다. 범인 서울주걱흡충은 대변 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결혼을 앞둔 남자가 닷새 전 정력을 키우려고 먹은 뱀이 옮긴 기생충이었다. 기생충을 소개한 각장 말미에는 위험도와 형태, 크기, 감염원, 증상 등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준다. 일종의 사건 해결 보고서인 셈이다.

저자는 ‘기생충이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책을 썼다고 한다. 너무 많이 먹어 고민인 현대인은 기생충에게 영양분을 나눠 줘도 큰 문제가 없다. 기생충은 분수를 안다. 그래서 세상에 ‘뚱뚱한 사람’은 있어도 ‘뚱뚱한 기생충’은 없단다. 기생충은 인간과 달리 탐욕스럽지 않다.

일부 기생충은 암수가 있고 생식기로 사랑을 나눈다. 짝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파렴치한 기생충도 있다. 인간과 오래 함께한 기생충은 자기 삶의 터전인 숙주(인간)를 웬만해선 괴롭히지 않는다. 암을 일으키고 인간을 조종하는 악당 기생충도 있긴 하지만.

저자는 ‘괴짜’다. 그는 어릴 적 못생긴 얼굴 탓에 설움이 컸단다. 대학시절 징그러운 외모의 기생충을 연구하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곧 기생충을 뜨겁게 사랑하게 됐다. 기생충을 연구할 땐 직접 제 눈에 넣기도 하고 환자의 물설사 속에서 기생충을 찾으려고 실험실에서 20일간 씨름하기도 했다. 외모 콤플렉스를 극복하려고 글을 썼다는 저자의 고백처럼 책도 진짜 재밌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서민의 기생충열전#기생충#항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