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배아저씨의 애니스쿨]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들(2)

  • 입력 2001년 1월 17일 16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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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에서 미적인 원리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죠. 애니메이션은 스크린에 펼쳐지는 연속그림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그림에 필요한 기초 지식과 원리가 모두 적용된다는 뜻이지요. 특히 2차원의 평면(즉, 스크린이나 모니터) 위에, 살아있는 3차원의 현실감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원근법'은 아주 중요한 요소로 기능하지요.

미술에서의 원근법(perspective)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보통 눈앞에 실재하는 입체물을 평면으로 옮겨 그릴 때, 크기가 같은 대상도 거리에 따라 그 크기에 일정한 변화를 주어 그리게 됩니다. 가까운 사물은 먼 곳에 있을 때보다 크게 그리죠. 투시도법은 이 때 이용합니다. 그래야 평면상의 그림은 우리 눈에 입체적으로 비쳐 보이게 되는 것이지요. 스크린이라는 평면에서도 같은 현상이 일어납니다. 스크린에 비친 이미지를 실제 눈앞에 전개되는 입체적인 현실로 받아들이는 까닭은 우리가 원근법에 익숙하기 때문입니다. 이 원리는 애니메이션의 배경 처리에 직접 응용됩니다. 원근법에 입각한 그림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이를 촬영한 스크린 이미지가 마치 실재하는 영화상의 공간으로 느껴지게 되죠.

애니메이션 현장에서 '파스'가 안 맞는다는 말을 자주 사용합니다. 바로 원근법, 즉 퍼스펙티브를 일본식으로 줄여 부르는 말이지요. 2D(평면) 애니메이션에서는 이런 '파스'가 정확하지 않은 장면이 간혹 발생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움직이지 않는 배경 부분의 그림 작업과 그 배경 위를 움직이는 캐릭터의 동작을 그리는 작업이 서로 분리되어서 진행되기 때문이죠. 간혹 화면 안 쪽으로 달려가는 말의 모습이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애니메이션을 보게 되죠. 이런 장면의 정지 이미지는 퍼스펙티브가 정확하게 잡혀있죠. 하지만 애니메이션은 일정한 지속시간 속에서 진행됩니다. 시작할때와 끝날때는 서로 다른 크기와 거리, 카메라 각도(앵글)를 갖게 되죠. 이 때 움직임의 각 단계별로 원근법이 정확히 일치해야 자연스러운 애니메이션을 얻게 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와 같은 분업화된 작업이 가져오는 잘못을 바로잡는 장치가 현장에서는 늘 가동되죠. 작업 중간마다 있는 검사부서의 체킹 시스템이 그것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제작과정을 다루는 시간에 좀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하겠습니다. 다만 촬영 전의 마지막 검사(final checking)가 중요한데, 여기서 별개로 진행되어 오던 배경과 동화 작업을 합쳐 실제 스크린에 보일 화면으로 조합합니다. 2D 컴퓨터 애니메이션 작업에서 랜더링 바로 전 단계와 동일하지요. 배경의 원근법은 물론 캐릭터의 사이즈나 방향 등을 종합하는 화면 전체의 퍼스펙티브를 세심하게 검토하는 기회이므로 잘못된 곳이 발견되면 수정하게 됩니다.

이전 시간에 말한 '타이밍'과 관련해서 애니메이션에서의 원근법은 배경처리 뿐만 아니라 자연스러운 동작을 구성하는데 아주 중요한 요소입니다. 화면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는 물체와 그 속도를 연출하는 애니메이션을 가정해 봅시다. 화면 먼 곳에서의 크기는 아주 작고 속도는 느려 보이죠. 화면에 다가올수록 대상은 원근법적으로 커지고 속도는 빨라집니다. 해당 화면의 지속시간에 맞춰 이들 요소를 적절하게 구사할 때 애니메이션은 우리의 시각을 만족시키는 움직임의 환상을 재현하게 됩니다. TV로 중계되는 원형 트랙을 달리는 육상 선수들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 보세요. 카메라의 앵글에 따라 코너를 돌 때 서로의 동작이 겹쳐 보이는 것에 주목하세요. 구부러진 고속도로와 질주하는 자동차를 표현하는데 좋은 참고사항이 됩니다. 회전문의 애니메이션도 회전할 때의 입체의 규칙과 퍼스펙티브가 정확하게 설계되어야 실감나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지요. 최근 애니메이션에서 점점 복잡하게 활용되는 카메라 이동의 경우는 원경, 중경, 근경 처리와 거리감, 속도, 보폭 등 원근법의 원리를 보다 정교하게 구사하여야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표현하게 됩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타잔>의 정글 속 질주 장면이 대표적이겠죠.

물론 원근법의 요소를 무슨 철칙처럼 적용하는 것이 좋은 애니메이션을 보장한다고 말할 수는 없지요. 만화에서 흔히 그렇듯이 원근법은 얼마든지 과장해서 활용할 수 있습니다. 광각렌즈를 사용할 때 얻을 수 있는 효과를 애니메이션 동작에 활용하여 극단적인 심리나 왜곡되고 과장된 화면이 되도록 표현할 수도 있어요. 또 아예 원근법을 무시하고 평면적 구성 자체의 느낌에 충실한 애니메이션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만화체 스타일의 애니메이션에서는 오히려 원근법을 무리하게 적용하는 것보다 인쇄만화의 평면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효과가 좋을 수 있습니다. 단편 애니메이션의 신선함은 이런 데서 오기도 하죠. 장편에서도 <욤욤공주와 도둑> 같은 작품은 입체적 구성 속에 원근법을 일탈하는 기발한 동작들이 숨어있어 꼼꼼하게 감상하면 애니메이션의 구성원리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예가 됩니다.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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