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배아저씨의 애니스쿨]나만의 꿈 일기장을 준비하자!

  • 입력 2001년 1월 17일 16시 00분


제 첫 글이 좀 딱딱했지요? 무슨 선언문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연재를 제대로 하겠다는 저의 과도한 의지 표현이었으니 살살 넘어가 주셨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애니메이션을 하려면 어떤 기본 자세를 지녀야 하는 지를 알아봅시다. 현장이나 연구실에 있다보면 많은 이들이 문의를 해옵니다.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은 데 어떤 준비를 해야 하나요?'라고. 공들여 이것저것 답변은 해왔지만 사실 뚜렷한 정답은 없습니다.

몇 년 전인가 유명한 <쥬라기 공원>의 스티븐 스필버그가 내한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도 역시 비슷한 질문이 기자회견에서 나왔습니다. '그 많은 아이디어를 어디서 찾나요?' 그의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꿈"이라고.

꿈보다 해몽이라고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하려면 꿈을 많이 꿔야 합니다. 다만 그 꿈이 개꿈이든 돼지꿈이든 잊혀지지 않도록 보관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당장 꿈 기록장을 준비하세요. 그림일기 같은 드림 다이어리 말입니다. 꿈은 시각적 전개과정입니다. 애니메이션 역시 시각적 사고를 풀어 가는 작업입니다. 잠들기 전에 꿈을 기록할 수 있는 일기장을 누워서 손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곳에 준비합니다. 꿈에서 깨자마자 기억이 흩어지기 전에 그 꿈의 그림을 그려놓자는 것이지요. 낙서 형태도 좋고 시각적 파노라마를 떠올릴 글이라도 좋습니다. 이 일기장은 아마 나중에 아주 훌륭한 애니메이션 아이디어의 보물창고가 될 것입니다. <월레스 앤 그로밋>(닉 파크 감독)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캐릭터는 어린 시절의 낙서에서 유래된 것이죠.

그림에 재능이 없으면 애니메이션을 못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다는 말과 그림에 대한 재능이 있다는 말은 조금 다른 것입니다. 재능도 훈련될 수 있으니까요. 때로는 99%의 노력이 천재의 1% 영감을 압도하기도 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다수의 성실한 공동작업이 집약되는 성과물이죠. 그래서 실질적인 그림의 전문가들과 소통이 가능할 정도만큼의 기본은 갖추는 것이 좋고, 꾸준한 훈련을 통해서 그 자세를 다듬는 것이 필요합니다. 기초적인 훈련방법 중 하나는 기존의 좋은 그림을 망쳐놓는 의식적인 낙서법이 있습니다. 모나리자에 수염을 그려 넣는 식이죠. 이런 단순한 낙서 첨가를 좀더 몰고 나가는 겁니다. 과장을 더해서 진부한 표현에 자신만의 창조성이 스며들 때까지 말이죠. 이 과정 자체가 그대로 한 편의 짧은 애니메이션이 되기도 합니다.

명작의 복사물 위로 중심 축을 이어 숨은 구도를 찾아봅니다. 후에 자신이 참여하는 애니메이션 화면의 구도 잡기와 틀(프레임) 정하기에 도움이 되죠. 어떤 것이 생략되어야 선이나 형태로 단순화되는 지도 그려봅니다. 왜 애니메이션 작품의 표현 스타일이 서로 다른 지는 이런 단순화 과정을 통해 밝혀집니다. 배경의 중요성, 심리적인 색채 사용 등은 이런 훈련을 통해 깨우칠 수 있습니다. 물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으로 시작하는 것이 열정을 불러오지요.

꼭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애니메이션은 결국 움직임 속의 예술이란 점입니다. 순차적으로 계획한 변화 과정을 단순하게라도 밟아가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애니메이터는 움직임을 따라잡는 눈을 가져야 합니다. 운동의 방향과 눈의 위치가 각기 달라도 대상이나 캐릭터의 원형이 전달될 수 있도록 시각화하려는 자세. 이런 동적 구성감각이 유지되도록 자신에게 공력을 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지켜지지 않으면 움직임의 예술인 애니메이션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음에는 애니메이션을 구성하는 다양한 요소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지 검토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이용배 (계원조형예술대 애니메이션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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