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옛그림 뒤에 숨은 ‘그림 읽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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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 기원 묘접도… 승승장구 수탉과 맨드라미… 그 상징과 비유의 세계
◇옛그림을 보는 법/허균 지음/352쪽·1만8000원/돌베개

앙증맞은 고양이와 어여쁜 나비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 ‘묘접도’. 얼핏 귀여운 동물을 형상화한 듯한 이 그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숨어 있다. 돌베개 제공
앙증맞은 고양이와 어여쁜 나비를 그린 조선시대 민화 ‘묘접도’. 얼핏 귀여운 동물을 형상화한 듯한 이 그림에는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 숨어 있다. 돌베개 제공
우리 옛 그림 중에 앙증맞은 고양이가 나비를 희롱하는 그림을 여럿 볼 수 있다. 묘접도(猫蝶圖)로 불리는 이 그림들은 현대인의 눈에는 애완동물에 대한 애틋한 정이 담긴 그림으로만 비칠 것이다. 하지만 묘접도에는 장수의 염원이 담겼다. 고양이나 나비가 오래 사는 동물도 아닌데 왜 그럴까?

중국어 발음으로 고양이 묘(猫·m ̄ao)는 늙은이 모(모·m´ao)와 비슷하고, 나비 접(蝶·di´e)은 늙은이 질(질·di´e)과 같다. ‘예기’의 곡례(曲禮) 편을 보면 모(모)는 80세, 질(질)은 90세에 해당한다. 따라서 고양이와 나비를 함께 그린 그림은 80세 노인과 90세 노인이 평화롭게 어울려 산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수탉과 맨드라미를 그린 그림도 그냥 화조화(花鳥畵)로만 봐선 안 된다. 그 그림에는 입신출세해 승승장구하라는 축원이 담겼기 때문이다. 한자문화권에서 수탉(雄鷄)은 영웅(雄)의 기상을 상징한다. 또한 수탉이 우는 것을 한자로 공계명(共鷄鳴)이라고 쓰는데, 여기서 공명(共鳴·g ̄ong m´ing)은 공을 세워 이름을 드날린다는 공명(功名·g ̄ong m´ing)과 발음이 같다. 맨드라미는 닭의 볏을 닮았다고 한자로 계관화(鷄冠花)라고 쓴다. 따라서 닭 위쪽에 맨드라미를 그려 놓으면 관 위에 관이 있다는 관상가관(冠上加冠)의 뜻을 지니게 된다.

보통 이런 화조화에선 새가 쌍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연밥과 백로를 그린 그림에선 백로가 늘 한 마리다. 그림에 일로연과(一路連科), 즉 ‘한길로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다’는 메시지가 담겼기 때문이다. 발음상 백로 로(鷺·l`u)와 길 로(路·l`u)가 같고 연밥을 뜻하는 연과(蓮顆·li´an k ̄e)와 연이어 과거에 급제한다는 연과(連科·li´an k ̄e)가 같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따라서 백로는 일로(一路)를 뜻하도록 한 마리여야만 하는 것이다.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으로 있는 저자가 쓴 이 책에는 이렇게 우리 옛 그림에 숨겨진 도상학(圖像學)의 비밀을 풀어낼 열쇠가 가득 담겼다. 저자는 2005년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선에 선정된 ‘한국의 정원, 선비가 거닐던 세계’의 필자다.

우리 옛 그림을 다룬 책들은 보통 그 그림들의 심미적 가치를 일깨우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책은 다르다. 180여 장의 컬러 도판으로 실린 우리 옛 그림 속에 담긴 뜻, 즉 화의(畵意)를 읽는 법을 체계적으로 알려준다. 그것은 그림 속 상징과 비유의 암호를 차곡차곡 풀어주는 것이기도 하고 그림 뒤에 감춰진 이야기를 구수하게 들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단원 김홍도의 ‘춘작보희도(春鵲報喜圖)’에 그려진 네 마리의 까치가 전자에 해당한다면 겸재 정선의 ‘동리채국도(東離採菊圖)’와 ‘유연견남산도(悠然見南山圖)’의 풍광은 후자에 해당한다. 춘작보희도에는 봄꽃 피는 나무 위에서 까치 네 마리가 즐겁게 노니는 모습이 담겼다. 희작(喜鵲)으로 불리는 까치는 즐거움(喜)을 상징하니 네 마리의 까치는 겹경사를 형상화한 쌍희자 무늬(囍囍)가 된다.

동리채국도와 유연견남산도는 모두 소나무 아래 앉은 남자가 먼 산을 바라보는 풍광을 담았다. 이는 도연명이 20수로 쓴 시 ‘음주(飮酒)’ 중 제5수에 등장하는 ‘동쪽 울타리 아래 국화꽃을 꺾어들고 유연히 남산을 바라본다’는 구절을 형상화함으로써 몸은 비록 속세에 살고 있지만 명리를 버리고 질박한 은자로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전하는 그림이다.

“서양 사람들은 어떤 존재를 대할 때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에 직접 결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대상을 바라보되 외형에 집착하지 않고 일정 거리를 두고 주관적 감성으로써 관조했다. 예컨대 소나무를 두고도 외관의 아름다움보다는 한겨울에도 푸른 생태적 속성을 사랑했고, 소나무에 얽힌 옛 성현들의 환영(幻影)을 찾는 데 더 관심을 두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이 말에 쉽게 동의할 순 없다. 서양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 종교화뿐 아니라 근현대 추상화에도 무수한 상징과 신화가 녹아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을 풀어내는 도상학이 서양에서 먼저 발전했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히려 문제는 옛 그림에 대한 이런 도상학적 접근을 대중에게서 유리된 전문 영역에만 남겨둔 우리 미술사학계의 풍토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추사 김정희가 강조한 ‘문자향서권기(文字香書券氣)’야말로 우리가 외면해 왔던 우리 그림에 담긴 도상학적 가치를 웅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자향서권기는 하나의 그림에 추상적 고담준론의 세계가 담겨야 한다는 고고한 엘리트 예술론이 아니라 그림 속에 숨겨진 진가에 눈뜰 수 있도록 우리를 격려하는 죽비 소리에 가깝지 않을까. 그런 맥락에서 다음 구절엔 절절히 동감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미술 작품은 유형문화이며, 그것을 생산한 것은 무형문화다. 따라서 미술은 유형문화인 동시에 무형문화라 할 수 있다. 숨어 있어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을 진성(眞性)이라고 한다면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유형의 것은 가형(假形)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림과 장식미술에 보이는 산, 물, 동물, 새, 식물, 인물 등 소재들은 모두 가형이다. 이들 가형을 통해 진성으로 들어가는 능력, 이것이 안목이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옛그림을 보는 법#상징#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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