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東亞]백두산 절경을 신문에… 주인공은 한복을 사랑한 야마하나 記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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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최초 사진기자

“천고(千古)의 신비경(神秘境)인 천지(天池)의 전경(全景).”

1921년 8월 29일자 동아일보 3면 톱에는 민족의 영산을 취재하기 위해 파견한 ‘백두산 탐험대’가 찍어 온 천지의 모습(사진)이 실렸다. 원산 북쪽에는 철도가 부설되지 않아 8월 8일 함흥을 출발한 탐험대는 북청 혜산진을 거쳐 16일이 돼서야 백두산 정상에 올랐다.

백두산 탐험대의 가장 큰 목적은 우리 손으로 백두산 절경을 카메라에 담는 것이었다. 이들은 무사히 취재를 마친 후 ‘백두산행’이라는 기행문과 ‘백두산 탐승(探勝) 화보’를 그해 8월 21일자부터 9월 8일자까지 18회 연재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신문 보도와 함께 8월 27일 백두산 사진을 환등기로 보여주는 ‘백두산 강연회’ 역시 대성황을 이룬 것. “20여 장의 환등으로 백두산의 장쾌한 실경을 구경시키다가 끝으로 천지의 전경이 나오매 관중 편에서 박수가 퍼부어 일어났었다.”(1921년 8월 29일자)

우리나라 민족지 역사상 최초로 백두산 사진을 촬영한 이는 동아일보 최초의 사진기자 야마하나(1890∼1935)였다. 그는 60여 명의 동아일보 창간 동인 중 유일한 일본인이었다. 당시 조선인 사진 기술자가 없었기 때문에 경성일보에서 스카우트한 기자였다. 1920년에 창간된 3개 민간신문 중 동아일보만 유일하게 사진기자가 있었다. 보통 사진관에서 사진을 찍으면 일주일 후에야 볼 수 있던 시절. 독자들은 당일 벌어진 사건의 사진이 저녁 신문에 나는 것을 신기하게 생각했다.

그는 동아일보에서 한국인이나 다름없었다. 그와 함께 일했던 고희동 기자는 “일인(日人) 행세를 하려는 몰지각한 동포들이 허다한 시절에 야마하나 씨는 한복까지 차려입고 다니며 한인 행세를 하면서 오직 직장에만 충실했다”고 그를 기억했다.

야마하나 기자 역시 조선인을 위해 일한다는 것에 긍지를 보였다. 그는 1930년에 쓴 회고담에서 “소위 ‘불령선인(不逞鮮人·일제가 말을 따르지 않는 조선인을 불온하다고 일컫는 말)’이란 말의 반어(反語)로 ‘불령일인(不逞日人)’이라는 별명을 지어 일본 사람들 사이에 나를 놀리는 일이 많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동아일보#사진기자#백두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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