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지내십니까]“산업화 - 민주화세대, 서로 다른 눈으로 상대 깎아내려 갈등”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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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을 치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강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대한민국예술원 유종호 회장은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안정된 듯 보여도 내면에 불안이 가득하다”고 진단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한국 사회의 세대 갈등을 치유하고 해법을 모색하는 강연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대한민국예술원 유종호 회장은 “우리 사회가 겉으로는 안정된 듯 보여도 내면에 불안이 가득하다”고 진단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인문학계 원로이자 문학평론가인 유종호 대한민국예술원 회장(79)이 최근 다시 강단에 섰다. 연세대 석좌교수직을 내려놓은 2006년 이후 8년 만이다. 돌아온 곳은 교단이 아니다. ‘문화의 안과 밖’ 운영위원회(위원장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가 1년에 걸쳐 펼치는 일반 강연이다.

우리 사회 가치와 정신의 붕괴를 진단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하자는 취지인 이번 강연 프로젝트에는 김 명예교수, 유 회장을 포함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오세정 서울대 교수, 이승환 고려대 교수, 김상환 서울대 교수, 문광훈 충북대 교수 등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교수진 7명을 포함해 총 50여 명의 국내 학자가 참여한다.

강사진 중 한 사람인 유 회장을 이달 20일 만났다. 그는 현재 한국사회 위기의 근원을 “이념 및 세대 갈등”이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위기가 아닌 때가 없었다. 나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났고 10대엔 전쟁이 일어났다. 20대엔 4·19와 5·16을 겪었다. 30대 후반은 유신시대였고. 줄곧 격동기를 살았다. 지금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안정된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불안이 내재해 있다. 어느 사회나 갈등이 있지만 도가 지나치다. 갈등과 대립을 자체적으로 조정하는 일에 우리는 익숙하지 않다.”

―어떤 갈등이 특히 문제라고 보나.

“이념 갈등이자 세대 간 갈등이다. 이념의 스펙트럼이 세대 차이와 맞물린다. 나는 이를 ‘386세대와 연만(年滿) 세대의 갈등’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세대 간에 공통경험이 없다보니 공감이 없고 동의하지 못하는 요소가 너무 많다.”

―서로 간에 동의하지 못하는 요소가 무엇인가.

“세계는 한국이 이뤄낸 산업화와 민주화가 이룬 성취에 놀란다. 바로 연만 세대가 산업화를 일궜고, 386세대가 민주화를 이뤘다. 그런데 386세대는 산업화의 성취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 반동으로 연만 세대도 젊은 세대를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다른 것이다.”

유 회장은 이 대목에서 “The past is a foreign country(과거는 외국이다)”라는 말을 꺼냈다. 1950년대 영국 소설에 등장해 속담처럼 쓰이는 말이라고 한다. 그는 “386세대와 그 이전 세대는 서로 간에 외국인을 대하고 있는 셈이다. 동족이라고 해서 서로를 안다고 생각하면 착각”이라고 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초록 산천을 보는 우리 세대의 감동을 젊은 세대가 알까. 내 세대만 해도 산이라고 하면 온통 붉었다. 박정희 정권 때 추진한 산림정책 덕분에 1982년 유엔식량농업기구도 ‘한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산림 복구에 성공한 유일한 국가’라 했다. 우리 세대는 울창한 산천을 보면 내 것이 아닌데도 부자 기분이 든다. 하지만 젊은 세대는 이런 시대를 ‘독재’라고 규정하면서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한 시대를 독재와 민주라는 이항 대립만으로 파악하는 것은 변태적”이라고도 했다.

“정치사(政治史)가 역사의 전부가 아니다. 문화·사회·경제도 중요하다. 1964년에 경희대에서 학생들에게 설문조사를 하면서 ‘향후 1999년 우리 국민소득을 예상해보라’고 했더니 ‘300달러’라고 쓴 답이 최고액이었다. 누구도 장담하지 못했던 산업화의 성과를 부정해선 안 된다. 이는 우리가 민주화세력에 경의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는 “역사를 알고 싶은 젊은 세대에게 식민지 시기의 소설 ‘만세전’ ‘사상의 월야’를 권하고 싶다”고 했다.

―요즘은 작가들이 사회적 발언도 많이 한다. 어떻게 보나.

“사회 참여의 방식이고 대세가 됐지만, 책임이 따른다. 작가만의 통찰력이 있어야 설득력이 있다. 70, 80년대엔 사회적 발언에 위험이 따랐고 용기가 필요했다. 요즘같이 깊은 성찰 없이 부화뇌동하는 건 작품 판촉행위로 보인다. 명성을 활용해 시장 활동을 하는 거다. 시장과 문학의 복잡한 병리 현상이다.”

―386세대를 대표하는 소설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 소식에 ‘나치’를 언급하기도 했다.

“불쑥 토로한 방언을 두고 시비하고 싶지 않지만 어떻게 나치와 비교를 하나. 타인에 대한 경의가 없는 풍토여서 모욕적인 언사를 예사로 한다. 모욕을 줌으로써 순간적인 우월감을 느끼는 거다. 인터넷 공간이 특히 그렇다. 물리적 폭력뿐 아니라 상징 폭력 또한 폭력이다.

―이번 강연은 온라인으로도 생중계된다. 반응이 너무 즉각적인 데 대해 낯설지 않으신가.

“1월 강연에서 5·16을 언급하며 ‘5·16혁명’이라 했다고 비난 댓글이 올라오더라. 그런데 난 5·16 당시 ‘혁명공약’을 암송했던 세대다. 처음 머릿속에 입력됐던 것이 불쑥 튀어나왔는데, 지엽말단을 가지고 비방하기 일쑤이니… 신중해야겠더라.”

2015년 1월 10일까지 1년간 매주 토요일 열리는 강의는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에서 이뤄진다.

강혜승 기자 fined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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