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시즌을 앞두고 바닥에 떨어진 한화의 성적을 책임질 보증수표로 영입됐지만 팀은 2년 연속 가을잔치에 초대받지 못했다. 도리어 투수 혹사와 부상 병동 논란 등이 불거지면서 그동안 쌓아올린 김 감독의 야구철학에 대한 신뢰가 밑바닥부터 흔들렸다.
계약 기간 3년 가운데 3분의 2를 보낸 김 감독에게 이번 시즌은 더욱 혹독한 시험대가 기다리고 있다. 한화 구단이 프런트에 힘을 실어주면서 상대적으로 김 감독의 역할은 축소되는 모양새다. 한화는 LG 감독, NC 육성이사 등을 지냈던 야구 선수 출신 박종훈 단장(58)을 새로 선임하며 업무 구분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실상 팀 운영의 전권을 휘둘렀다는 평가를 듣던 김 감독의 팔다리를 묶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자신을 둘러싼 이 같은 기류 변화에 대해 김 감독은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20일 한화가 스프링캠프를 차린 일본 오키나와에서 김 감독을 만났을 때였다. 김 감독은 “(선수 출신 단장 선임은) 환영할 일이며 너무 늦게 시작되지 않았나 싶다”면서도 “우리나라가 너무 흐름에 민감하다. 남이 하니까 하고, 미국이 하니까 따라 하는 식이 돼선 안 된다. 변화란 쉽게 오는 게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그는 “(미국식) 프런트 야구를 하려면 그 바닥의 사고방식이나 사상 등 모든 것을 갖춰 놓은 상황에서 움직여야 한다. 더 깊은 곳, 더 높은 곳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펜을 꺼내들어 메모까지 해가며 선수 육성의 역할은 감독을 비롯한 현장에 맡겨야 한다고도 했다. “프런트 역할은 육성이 아니라 보강이다. 프런트가 육성을 맡겠다는 건 영역 침범이자 간섭이다.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선 업적을 세운 다음에 해야지 그저 현장 간섭을 프런트 야구라고 착각해선 안 된다.”
지난해 한국시리즈 2연패를 이룬 두산은 프런트 야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프런트 야구가 높게 평가되는 데 대해서 김 감독은 왼손 주먹으로 테이블까지 쳐가며 동의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두산이 프런트 야구에 성공한 건 맞지만, 그 밖의 많은 구단이 프런트 야구를 시도했다 실패하지 않았나. 반대로 프런트 야구를 하지 않고도 성공한 구단에 대해선 또 어떻게 설명할 건가.”
지도자 인생의 최대 위기에 몰린 김 감독은 결국 자신의 능력을 성적으로 보여주는 것 말고는 다른 탈출구가 없어 보인다. 우선은 9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한화를 가을잔치에 올려놓는 게 당면 과제다.
김 감독은 구체적인 순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몇 위를 하겠다는 말보다는 팀에 ‘우리는 하나’라는 정신을 남겨 놓고 싶다. 각자가 할 것을 하고 거기에 대한 의무와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팀을 남기고 싶다”고 소신을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부상 투수들이 복귀하고 주전과 백업 선수의 기량 차를 좁히는 게 관건이다. 아킬레스건인 오른손 외야수와 포수도 보강해야 한다”고 했다.
내년 이맘때쯤 김 감독은 어떤 자리에 있을까. 자신의 거취에 대해서도 그는 단호했다. “나는 어디서든 죽을 때까지 야구장에 있을 것이다.” 인터뷰를 마칠 무렵 김 감독은 갑자기 “춤추는 사람이 춤을 춰야지, 무대도 옮기고 춤도 추지 말라고 하고는 도리어 자기네들이 춤을 추고 있다”고 했다. 자신을 향한 이런저런 제약에 불만을 드러낸 뼈 있는 발언이었다.
김 감독과 인터뷰를 진행한 장소는 고친다(東風平) 구장이었다. 봄바람이 부는 곳이라는 의미였지만 이날 차가운 비바람이 불어 훈련을 중단할 정도였다. 한화를 고치기 위한 마지막 시즌을 시작한 70대 노감독의 마음에도 찬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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