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식의 스포츠&]국대 감독은 병역브로커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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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급 와일드카드 삼총사’ 조현우, 손흥민, 황의조(왼쪽부터)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 금메달을 깨물어 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보고르=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역대급 와일드카드 삼총사’ 조현우, 손흥민, 황의조(왼쪽부터)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 금메달을 깨물어 보이며 기뻐하고 있다. 보고르=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전현직 프로야구 선수와 유명 탤런트 등이 병역브로커를 통해 신장질환인 것처럼 속여 병역면제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수사선상에 오른 프로야구 선수가 무려 110여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2004년 떠들썩했던 대형 병역비리 사건 기사의 일부다.

그런데 국내 스포츠팬들 사이에서 ‘병역브로커’는 다른 의미로도 쓰인다. 자신은 이미 병역을 마친 감독 또는 선수가 훌륭한 지도력과 결정적인 수훈으로 팀 선수 또는 동료에게 병역면제라는 큰 선물을 안긴 경우를 가리킨다. 이들의 활동은 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병역법 제33조 7(예술·체육요원의 추천)의 기준은 올림픽 3위 이내, 아시아경기 1위다.

역대 감독으로는 홍명보, 선수로는 이승엽이 대표적인 ‘합법적 병역브로커’로 불렸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 축구와 야구 우승을 이끈 김학범 감독과 선동열 감독은 각각 20명과 9명의 선수를 경력단절 위기에서 구했다.

똑같은 금메달을 따냈건만 잔칫집 같은 축구와 달리 야구는 초상집 분위기다. 한마디로 ‘오지환 파문’이 일파만파다. 금메달 박탈 국민청원이 등장하더니, 국방부와 병무청은 물론이고 문화체육관광부 등 관계 부처도 병역특례제도에 대한 전반적인 재검토에 들어갔다.

‘오지환 사태’를 차분히 따져보자. 여론은 ‘이참에 태극전사 병역특례를 전면 폐지하자’는 게 아니다. ‘깜냥이 안 된다’고 판단된 선수가 병역면탈을 받는 것에 분노하고 있는 것이다. 손흥민(26)과 함께 이번 축구대표팀(U-23)에서 와일드카드로 뛴 황의조(26)의 병역면제는 축하받고 있지 않은가.

황의조는 자신을 둘러싼 인맥 논란을 소나기 골로 잠재우며 아시아경기 2연패의 주역으로 우뚝 섰다. 반면 병역 버티기 의혹으로 미운털이 박힌 오지환(28)은 부진을 면치 못해 주홍글씨(병역혜택 무임승차)가 평생 따라다닐 듯하다.

병역법에 명기된 병역면제 태극전사의 공식 명칭은 체육요원이다. 1973년부터 시행된 체육요원제도는 올림픽을 비롯해 세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 유니버시아드, 아시아경기 및 아시아선수권(청소년대회 포함) 3위 이내까지 병역혜택을 줬다. 한국체대 졸업성적 우수자(10%)도 대상자였다.

그런 체육요원으로 가는 길은 갈수록 좁아졌다. 1984년부터 아시아경기는 금메달리스트로 축소됐고, 1990년부터는 올림픽(금, 은, 동메달)과 아시아경기(금메달) 딱 2개 대회로 한정됐다. 체육계에서는 “부족한 선수 자원 등 여러 여건을 감안할 때 병역특례 적용 대회와 기준은 현재가 마지노선”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논란의 핵심은 제도 자체가 아니라 투명하고 공정한 운용이다. 야구는 거센 비난 여론에 부랴부랴 ‘2022 항저우 아시아경기에는 젊은 프로 유망주와 아마추어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유망주는 과연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발할 것인가. ‘제2의 오지환 파문’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야구처럼 기술위원회도 없이 선수 선발의 전권(全權)을 가진 전임(專任) 감독은 거부할 수 없는 ‘민원’에 진짜 병역브로커로 전락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은 스포츠 선진국은 아니지만 메달 수로는 스포츠 강국이다. 산업화 시절부터 정부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소수의 엘리트 선수를 집중 육성한 결과다. 소수의 대기업을 집중 지원해 경제적으로 압축성장한 것과 비슷하다.

세상사 공과(功過)가 있기 마련이다. 일이든 사람이든. 완전히 옳고 전적으로 그른 경우는 드물다. 국가대표 스포츠 선수에 대한 병역특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병역혜택은 메달 색깔을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경기력 향상에 효험이 있다’는 게 공공연한 비밀이다. 공개 석상에서 그렇게 말하는 선수나 지도자는 없겠지만 사석이나 은퇴 후엔 스스럼없이 고백한다.

이미 눈높이가 눈썹 위로 올라간 국민들에게 ‘올림픽은 참가에 의의가 있다’는 피에르 쿠베르탱의 말은 성에 차지 않는다. 게다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묻지마 메달’은 더 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오늘날의 태극전사는 ‘두 마리 토끼(메달+매너)’를 모두 잡아야 한다.

벼룩 잡겠다고 초가삼간 다 태워서는 곤란하다. “병역특례 전면폐지”는 현실을 도외시한 무책임한 주장이다. 병역특례제도 재검토는 미비점을 보완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태극마크를 달아주기 전에 인성(人性) 검증은 꼭 필요해 보인다. 아무쪼록 태극전사에게 ‘죄인 아닌 죄인’의 멍에를 씌우지는 말자.

안영식 스포츠 전문기자 ysahn@donga.com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병역 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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