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의 바다와 배, 그리고 별]〈5〉아찔한 미션 “원목을 수송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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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내 연구실을 둘러보니 온통 책꽂이와 책상뿐이다. 은은한 나무향이 밀려오면 편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향이 가끔 원목선 탈 때를 떠올리게 하면 느낌은 오싹함으로 바뀐다.

원목 운송은 위험해 선원들이 기피하기로 유명하다. 선원에게 생명수당을 따로 지급할 정도다. 보통 갑판 아래 선창에 화물이 실린다. 화물을 선창에 가득 실으면 마치 오뚝이의 원리와 같이 선박이 경사져도 쉽게 제자리로 돌아온다. 배 중심이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목은 갑판 아래의 공간으로는 부족해 위에도 가득 싣는다. 선박이 기울면 돌아오는 힘인 복원성이 약해져 뒤집힐 우려가 있다.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와 오리건주는 원목 수출지로 유명하다. 이곳을 흐르는 컬럼비아강은 미국 북서부 깊은 내륙에서 발원한다. 벌채한 원목을 뗏목 다발로 만들어 강을 따라 내려 보내면 워싱턴주 롱뷰 같은 강 항구에서 원목 다발을 선박에 싣는다. 원목을 싣는 작업을 1주일 정도 하면 출항 하루 전 1등 항해사는 큰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제 남은 공간에 얼마를 더 실을지 말이다. 여기에서 고려하는 요소가 복원성이다. 선박을 인위적으로 좌우로 움직이게 만들어 이동 주기가 몇 초인지 초시계로 잰다. 계산수식에 따라 간단히 복원성을 구할 수 있다.

화주(화물 주인)는 1등 항해사에게 가져온 원목 다발을 다 싣자고 사정한다. 만약 몇 다발만 남겨도 컬럼비아강을 따라 원목을 원위치에 가져다 놓아야 하는데, 끌고 가는 비용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가는 운송비보다 더 든다. 이 상황에서 1등 항해사의 마음이 약해져서는 안 된다. ‘용왕님 안 만나려면 냉정함뿐’이라고 되뇌어야 한다. 북태평양의 차디찬 바다를 떠올려야 한다. 배가 알류샨열도를 지날 때 파도가 갑판 위에 놓인 원목에 얼음을 만든다. 얼음 무게까지 추가된다. 이 경우를 모두 고려해 화물 무게를 결정해야 한다. 몇 다발을 추가로 실었다가 복원력이 나빠지면 배가 전복될 위험이 더 높아진다.

원목선 생활은 매우 한가롭고 편안하다. 탁구를 편하게 칠 수 있고 잠도 편하게 잘 수 있다. 선박이 긴 주기에 걸쳐 천천히 좌우로 이동하기 때문에 육지에 있는 것과 같이 느껴진다. 원목선에서 뱃멀미는 없다. 그렇지만 경험 많은 선원들은 마음이 편하지 않다. 선박이 긴 주기로 움직인다는 것은 복원성이 나쁘다는 의미다. 옆에서 큰 파도를 맞으면 선박은 전복되기 쉽기 때문이다. 원목선에서 옆 파도인 횡파(橫波)를 맞는 것은 금기사항이다. 항해 도중 선장과 항해사들은 배의 앞쪽에서 파도를 맞도록 파도의 방향과 부단히 싸운다.

하역작업은 부두에서 최소한 1주일 이상 걸린다. 선원들은 항구에 상륙해 쇼핑을 하거나 간단히 맥주를 마실 수 있다. 하루 만에 출항하는 컨테이너 선박과 비교할 때 큰 장점이다. 인연을 만나는 기회도 있다. 나는 보잉사를 은퇴한 덜쿠퍼 씨 부부를 1985년 워싱턴주 포트앤젤레스에서 만나 20년 이상 인연을 이어왔다. 이들을 통해 미국 중산층 사회의 일면을 알게 됐다. 그가 건네준 1940년 발간 타임지는 소장품 1호다. ‘이 타임지도 그러고 보니 나무로 만든 거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원목선#선원#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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