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자의 ‘사談진談’]VIP의 뒤로는 가지 마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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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출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관저 앞에서 벌어진 이 광경은 전속이 찍었다. 사진기자는 공개된 때에만 이곳에 갈 수 있다. 청와대 제공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하기 위해 판문점으로 출발하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 관저 앞에서 벌어진 이 광경은 전속이 찍었다. 사진기자는 공개된 때에만 이곳에 갈 수 있다. 청와대 제공
김재명 기자
김재명 기자
커다란 망원렌즈를 장착한 카메라는 판문점 북측 통일각을 주시하고 있었다. 문이 언제 열릴까? 카메라가 흔들리지 않도록 깊은 숨을 들이쉬고 숨을 참은 상태에서 셔터에 손을 올렸다. 통일각 문이 열리며 경호원에 둘러싸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쪽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맞이하기 위해 움직였다.

이 순간을 기다려 셔터를 누른 이들이 있었다. 바로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들은 보안이 민감한 판문점 일대의 특성상 이동이 제한되자 여러 고정된 장소에서 남북 정상의 모습을 앵글에 담았다. 미리 북한 지역으로 건너가 문 대통령이 걸어오는 모습과 ‘월북’ 장면을 찍은 한 통신사 기자, 자유의집 1층에서 통일각을 배경으로 두 정상이 손을 잡고 걸어오는 모습을 찍은 동아일보 기자, 또 다른 앵글을 위해 건물 옥상에서 두 정상의 모습을 기록한 모 언론사 기자 등이었다.

그런데 사진기자들 외에 남북 정상의 모습을 앵글에 담는 이들이 또 있었다. 바로 청와대 소속 사진 담당 직원들, 일명 ‘전속’들이었다. 이렇게 대통령을 앵글에 담을 수 있는 이들은 청와대사진기자단 14명과 전속 2명뿐이다.

기자단과 전속들의 ‘카메라’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VIP를 앵글에 담는 민감함 때문인지 청와대사진기자단에는 제약이 좀 있다. 국무회의, 수석·보좌관회의 등 모든 대통령 참석 행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취재하는 건 아니다. 언론 공개 범위가 사전에 정해져 있다. 이를테면 국가유공자 초청 오찬이 열렸다면, 행사는 대통령 모두 발언이나 건배사까지만 공개된다. 사진기자들은 이 순간까지만 셔터를 누를 수 있다. 신문에서 대통령이 숟가락을 든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대통령의 뒤쪽으로 가 사진을 찍는 것은 경호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 VIP의 뒷모습 사진이 없는 게 이해가 갈 것이다.

렌즈에도 기자단 스스로가 정한 제약이 있다. 화각(카메라로 포착하는 장면의 시야)이 너무 큰 렌즈는 사용할 수 없다. 화각이 큰 렌즈를 단 카메라의 경우 피사체에 가까이 가서 찍어야 한다. 이 경우 VIP에 가까이 다가가야 하는데 이는 경호상 좋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전속들은 보안상 민감한 사안이나 대통령의 사적 영역을 커버하는 경우가 많다. 신문에 가끔 실리는 청와대 지하벙커 사진은 주로 전속이 찍어 언론사에 제공한 것이다. 사진기자는 공개된 때에만 여기에 갈 수 있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장면이나 VIP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져야 하는 장면 등도 전속의 몫이다. 정상회담에서 남북 정상이 평양냉면을 먹는 장면, 지난달 문 대통령의 휴가 기간 공개된 책 읽는 모습, 과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서 손자와 함께한 일상 등이 모두 전속의 카메라가 찍은 것이다.

현재 사진기자단은 국내 언론사 가운데 청와대 출입 조건을 충족한 신문, 통신사 기자들로 이뤄졌다. 이들은 대통령의 국내 일정뿐 아니라 해외에서 열리는 정상회담 등도 취재한다. 청와대 출입증이 있다고 매일 대통령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호상의 이유와 혼잡을 피하기 위해 기자들끼리 순번을 정해 2∼5명 정도가 대표로 취재해 사진을 공유한다. 이는 청와대를 출입하는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모두 동일하다. 이러한 방식을 ‘풀(POOL) 취재’라 부르며 외국에서도 마찬가지 방식을 쓴다. 6월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동행한 기자들 중 일부가 취재한 것을 공유하는 방식을 썼다.

2000년과 2007년 평양에서 열린 1, 2차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는 청와대사진기자단 일부만이 방북할 수 있었다. 반면 이번 판문점 회담에서는 많은 북한 사진기자들과 전속들이 남한에서 활발한 취재 활동을 벌였다. 이달 예정된 평양 회담에서는 판문점 때처럼 남북 기자들이 함께 전 일정을 기록할 수 있도록 문호가 개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역사의 현장에 서는 것이 ‘카메라 기록자’들의 임무니까.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남북 정상회담#문재인#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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