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화의 미술시간]〈27〉그녀의 이별 극복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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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 칼 ‘잘 지내길 바라’ 설치 전경. 2007년.
소피 칼 ‘잘 지내길 바라’ 설치 전경. 2007년.
영국 소설가 조지 엘리엇은 ‘이별의 아픔 속에서만 사랑의 깊이를 알 수 있다’고 했다.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게 연애고 인생이라지만 이별의 쓰라린 아픔을 극복하는 건 쉽지 않다. 프랑스 미술가 소피 칼은 51세 때 실연의 아픔을 겪지만 자신의 일상마저도 예술이 되게 하는 그녀의 이별 극복기는 좀 유별나다.

칼은 어느 날 남자 친구로부터 헤어지자는 내용의 e메일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이별 통보에 충격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흐르는 눈물에 편지 글을 제대로 읽을 수도 없었다. 편지 말미에 그가 무심히 써놓은 ‘잘 지내길 바라(Take care of yourself)’라는 작별인사는 특히 어이가 없었다. 가슴 찢어지는 결별의 문구들을 구구절절 써놓고선 잘 지내길 바란다는 모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다. 편지 내용에 의구심이 든 그녀는 107명의 지인 여성들에게 자신이 받은 이별 편지를 보내 각자의 직업적 관점으로 해석하고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신분석학자, 판사, 외교관, 유엔 여성 인권 전문가, 가족치료사, 큐레이터, 동화작가, 댄서, 가수 등 각계각층의 다양한 여성들이 기꺼이 동참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국어교사는 맞춤법을 수정해 보내왔고, 국가정보원 직원은 편지글을 암호문자로 번역하는가 하면, 동화작가는 동화 이야기로 재구성해 보내왔다. 또 댄서는 춤으로, 가수는 노래로 만들었고 어떤 이는 편지글을 낭독하는 모습을 동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해 보내왔다. 작가 자신도 편지글을 다각도로 분석했다. 교정교열도 해보고, 만화로도 만들어 보고, 사격선수들의 표적으로 사용해 보기도 했다.

100명 이상의 여성에 의해 분석되고 해체된 편지글은 이제 더 이상 작가 개인의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자신의 아픔을 객관화하고 다른 이들과 나눔으로써 작가는 이별의 아픔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다. 예술이 된 그녀의 이별 극복기는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에 전시돼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은화 미술평론가
#소피 칼#잘 지내길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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