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의 우당탕탕]〈4〉황영조를 이기라는 특명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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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나는 한 달 전부터 남산 둘레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결혼 전에는 마라톤 풀코스에 도전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했고 실제로 다섯 번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4시간 29분. 그러나 평일에는 바쁘고 주말에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달리기를 잊고 살았다. 그런데 체력도 약해진 것 같고, 뭔가 몸에 찌꺼기가 쌓이는 기분이 들어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니, 15년 전 철없던 도전이 생각난다. 그 시절 나는 라디오 작가를 그만두고 할 일 없는 백수로 살았다. 정말 할 일이 없어서 밥만 먹으면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리기를 했다. 그때 나에게 마라톤을 알려준 사람은 DJ 박철이다.

“마라톤은 빨리 가는 것보다 끝까지 완주하는 게 중요해. 무턱대고 뛰지 말고 뛰는 방법을 배워야 돼. 일단 발뒤꿈치부터 살살 디디면서 발가락 쪽이 나중에 닿게 뛰어야 무릎에 무리가 안 가고 오래 달릴 수 있어!”

어느 날 철이 형이 나에게 솔깃한 제안을 했다.

“괌에서 열리는 국제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볼래? 우승하면 상금이 2000만 원이야. 비행기표 값이랑 경비는 형이 대줄 테니까 도전해봐. 만약에 27분 안에 들어오면 네가 우승이야!”

그 시절 백수였기 때문에 2000만 원이라는 상금이 간절했다. 처음 10km 기록을 재보니 1시간03분! 그날부터 술도 끊고 열심히 달리기만 했다. 한 달 만에 50분 안쪽으로 들어왔고 49분50초라는 기록을 세우게 됐다.

“축하한다. 넌 달리기를 위해서 타고난 몸이야. 괌에 가면 형도 코치로 따라갈게!”

마라톤을 하면서 내 근육이 ‘속근’이 아니라 ‘지근’이라는 걸 알게 됐다. 속근이 발달된 사람들은 단거리를 잘하고, 지근이 발달한 사람은 장거리나 마라톤 같은 운동을 잘한다. 한 달 동안 정말 열심히 연습한 덕분에 44분53초라는 생애 최고 기록을 세우게 됐다.

그렇게 열심히 달리기를 하던 어느 날, 일산호수공원에서 달리기의 신이라고 불리는 ‘외로운 늑대’라는 코치님을 만나게 됐다. 그 코치님은 황영조 선수와 달리기 훈련을 할 정도로 유명한 분이었다.

“내가 쭉 지켜봤는데…왜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거예요?”

“괌에서 열리는 10km 마라톤 대회에 나가보려고 합니다.”

“거기는 세계 대회라서 쉽지 않은데….”

“일단 30분 안으로 들어오는 게 목표고! 28분 안에 들어오면 우승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28분! 아…, 열심히 해봐요. 황영조 선수가 29분이 기록이니까! 재국 씨가 28분에 들어오면 우리나라 최고 기록이에요!”

띵∼∼∼∼! 난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바로 철이 형에게 전화했다.

“형! 황영조 기록이 29분이라는데 어떻게 28분에 뛰어요?”

“야! 국제 마라톤 대횐데, 거기서 우승하기가 쉽냐!! 포기하지 말고 열심히 해봐!”

난 맥이 풀렸고, 그날 이후 숨도 안 쉬고 뛰었지만 내 최고 기록인 44분53초에서 1초도 줄어들지 않았다. 아, 나의 무모했던 도전이여!!!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달리기#박철#마라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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