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9〉사진의 윤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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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명한 보도사진 편집자 도널드 R 윈즐로는 어느 날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한 사람은 ‘사이공의 즉결처형’으로 유명한 세계적인 사진기자 에디 애덤스였다. 그는 조만간 자신이 죽으면 ‘사이공의 즉결처형’에 대한 언급을 자제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두 사람의 죽음과 관련된 사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는 거였다. 그가 말하는 두 사람은 응우옌응옥로안 남베트남 장군과 그의 총에 죽은 베트콩 포로 응우옌반렘이었다. 실제로 죽은 사람은 하나였지만 그는 장군도 그 사진으로 죽었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그 사진에서 죽었어요. 장군은 베트콩을 죽였고, 나는 카메라로 장군을 죽였어요.” 양민 학살의 주모자인 베트콩 포로가 처형된 상황이 사진의 자극적인 이미지 때문에 어디론가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장군만 사악한 인물로 부각시켰다는, 그래서 자기가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자책이었다. 그가 종군 사진작가로서 따라다니며 알았던 장군은 결코 그렇지 않았지만 그 사진이 그에게 지울 수 없는 낙인을 찍었다.

비록 전쟁의 야만성을 환기시키면서 반전여론에 불을 지피고 퓰리처상까지 받은 사진이었지만 그는 죄의식을 느끼게 하는 끔찍한 사진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두 생명이 파괴되었고 나는 그 대가로 돈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어 했을까. 남베트남의 패망 직후 베트남을 탈출해 바다 위를 떠도는 난민들(‘보트 피플’)을 찍은 사진들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 사진들로 미국 의회와 정부를 움직여 20만 명 이상의 베트남 난민을 미국이 받아들이는 데 공헌한 것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그의 전화는 의도와는 다른 이미지로 고착되어 소비되면서 결국에는 반쪽의 진실만을 얘기하는 사진의 위험을 환기시켰다. 그것은 자기로 인해 상처받은 타인들을 배려하는 최소한의 윤리적인 몸짓이기도 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에디 애덤스#사이공의 즉결처형#베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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