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은철의 스토리와 치유]〈51〉부드러움의 부족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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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성은 차고 넘쳐도 부드러움이 부족한 예술가들이 있다. 사흘 전에 세상을 떠난 영국 작가 V S 나이폴도 그중 하나였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트리니다드 출신이라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함으로써 트리니다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줬다. 그에게 트리니다드는 음악과 춤만 있고 문화와 문명이 부재한 야만적인 곳이었다. 그는 2001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도 영국과 인도에 영광을 돌린다고 하면서 트리니다드는 쏙 빼놓았다.

아프리카를 향해서도 부드러움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아프리카는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며 ‘미래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이슬람 세계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그에게 이슬람은 비논리적이고 위선적이며, 잠재적인 광신도이자 테러리스트였다. 이쯤 되면 제3세계에 대한 그의 생각은 혐오에 가까웠다. 그는 제3세계 출신이면서도, 그 세계의 어두운 현실만 보고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는 식민주의자들의 생각을 학습하고 받아들여 그들을 대변했다. 대단한 역설이었다.

그러다 보니 여성에 대한 시각도 온전할 리 없었다. 그에게 여성은 ‘감상적이고 세계에 대한 좁은 견해’가 특징이었다. 그래서 그는 어떤 글을 한두 단락만 읽으면 그것이 여자의 글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고 자신했다. 그는 위대한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에 대해서는 코웃음을 쳤고, 자신과 필적할 여성 작가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문제는 여성혐오의 감정이었다.

나이폴의 소설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미국 학자 어빙 하우는 나이폴의 문제를 “혐오감의 과잉과 부드러움의 부족”이라고 진단했다. 맞다, 나이폴은 ‘비스와스 씨를 위한 집’이나 ‘강의 한 굽이’ 같은 고전적인 소설을 쓰고 노벨 문학상까지 수상한 놀라운 재능의 작가였지만, 문학의 본령이 타자들을 감싸 안는 부드러움과 너그러움에 있다는 것을 도외시했다. 이제 애도의 대상이 된 그는 어째서 생전에 이 세상의 타자들에게 그토록 상처를 주며 살아야 했을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v s 나이폴#트리니다드#아프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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