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오래된 것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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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는 반드시 오래된 건물들이 있어야 한다.”

―제인 제이컵스,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황두진 건축가
황두진 건축가
이 짧은 문장은 순간적인 판단을 요구한다. 동의하는가? 그렇다면 당연히 계속 읽어봐야 한다. 동의하지 않는가? 그렇더라도 계속 읽어야 할 이유가 있다. 저자가 그만큼 신념을 가지고 쓴 문장이다. 그에 대한 설명도 충실하다.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키워 나가는 데 도움이 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도시 문제라면 더욱 그렇다.

제인 제이컵스는 현대 도시를 이야기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미국의 저술가 및 사회운동가다. 1961년에 발행한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은 당시 미국 도시정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담은 고전이다. 대부분 고전이 그러하듯이 인용은 자주 되지만 다 읽은 사람은 드물다. 600페이지 가까운 분량으로 혼자 읽기보다 몇 사람과 함께 읽을 것을 권해야 할 정도다.

제이컵스는 좋은 도시란 다양성을 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 네 가지 조건으로 혼합적인 주요 용도, 짧은 도시 블록, 오래된 건물, 그리고 집중을 들었다. 그중에서도 ‘오래된 건물’이 유독 강렬하게 다가오는 것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그 가치에 대한 인식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 오래된 것은 낡은 것이고, 낡은 것은 빨리 새것으로 대체해야 할 것일 뿐이다. 저자는 도시의 다양성이 정서적 측면만이 아닌,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유용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오래된 건물은 그 지역의 문화뿐 아니라 경제적 풍요에도 크게 기여한다는 것이다.

도시 재생이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즘, 제이컵스의 저서는 다시 한번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몇십 년이 지나도 유효한 그 통찰력과 현실 감각이 이 책의 장점이다. 제목에서 ‘죽음’이 ‘삶’보다 앞으로 나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결국 도시란 수없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즉 재생의 과정을 반복한다는 의미에서 이 이상 더 적절할 수는 없다.
 
황두진 건축가
#제인 제이컵스#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도시 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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