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名문장]음식 한 그릇의 소중함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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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이사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이사
“사대부 음식 먹을 때 다섯 가지를 보라. 첫째는 힘듦의 다소를 헤아리고, 저것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하여 보라. 이 음식은 갈고 심고 거두고 찧고 까불고 지진 후에 공이 많이 든 것이다. 하물며 산 짐승을 잡고 베어 내어 맛있게 하려니 한 사람이 먹는 것이 열 사람이 애쓴 것이다.”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閨閤叢書·1809년)’

옛 조리서를 읽는 것은 언제나 행복하다. 음식 조리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만든 이의 철학이 들어 있고, 음양오행과 우주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1400년대 조리서인 ‘식료찬요(食療纂要)’부터 1900년대의 ‘조선요리제법(朝鮮料理製法)’까지 600년간 이어진 옛 조리서를 차례로 읽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조리법 그대로 음식을 재현해 왔다. 옛 조리서 중에서도 1800년대 한학(漢學)의 소양을 바탕으로 우리 가정생활의 법도와 양식을 바로잡아 후세까지 전해준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가 가장 인상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식재료가 넘쳐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인터넷 등의 영향으로 동서양의 음식문화가 어우러지면서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식탁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요즈음 우리가 먹는 이 음식들이 귀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알맞게 먹기보다 생각 없이 폭식하는 경우가 많고, 그러다 보니 비만으로 건강까지 해치는 경우가 많다.

식재료 생산부터, 음식이 식탁에 오르기까지 내가 먹는 음식 한 그릇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애쓰고 수고한 것인지도 미처 깨닫지 못하는 것 같다. 한 사람이 먹는 것이지만 열 사람이 애쓴 것이며 부모의 공덕도 함께 들어 있음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먹는 음식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된다.

지금도 나는 음식을 대할 때마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말씀하신 빙허각 할머니를 잠시 생각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식탁에 앉는다.
 
윤숙자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대표이사
#규합총서#빙허각 이씨#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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