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공격당하기 전에 너를 저격해야 한다’고 협박했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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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구 기자의 對話]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의 대표저자 밴디 리

정신의학자로서 알게 된 어떤 사안이, 만약 인류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을 품고 있다면? 그는 “이 책을 출간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며 “특정 공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골드워터’ 규칙이 있다면, 반대로 침묵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해가 말해서 생기는 악영향보다 더 클 때를 제시하는 규칙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정신의학자로서 알게 된 어떤 사안이, 만약 인류의 생존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엄청난 위험을 품고 있다면? 그는 “이 책을 출간한 가장 큰 이유가 이것이었다”며 “특정 공인의 정신건강에 대해 전문적 의견을 제시하지 말아야 한다는 ‘골드워터’ 규칙이 있다면, 반대로 침묵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해가 말해서 생기는 악영향보다 더 클 때를 제시하는 규칙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 눈이 펑펑 내린 3월의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 섭외한 서울 종로구 부암동의 작은 찻집을 찾았다. 커피를 주문하는데 주인아주머니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근디 누굴 인터뷰하는겨?”

“밴디 리라고요, 미국 대학교수인데 트럼프 대통령의 위험성에 대한 책을 쓴 분이에요.”

“글치…, 갸가 많이 위험허지….”

지난해 10월,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란 책이 미국에서 출간됐다(한국은 지난달 말). 이 책은 같은 해 4월 열린 ‘예일콘퍼런스’의 발표문과 이후 기고문을 모은 것이다. 미국 최고의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심리학자 27명이 트럼프의 정신건강을 기술한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아마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를 정도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낸 이가 한국계 미국인으로 예일대 의과대학원 법·정신의학부 임상조교수인 밴디 리다. 》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트럼프의 정신상태에 대한 첫 전문 서적인데, 미국에서의 반응은 어느 정도였나.

“출판 이틀 만에 재고가 다 나가고, 아마존에서는 다시 인쇄할 때마다 2시간 만에 매진이 됐다. 이후 트럼프 백악관의 뒷이야기를 다룬 ‘화염과 분노(fire and fury)’가 나오면서 우리 책이 다시 관심을 받았다. (트럼프가 미국 출판업계를 먹여 살린 건가?) 하하하, 워낙 그의 정신상태에 대한 관심이 많으니까…. 그 흐름을 잘 탄 것 같다.”

―그가 왜 출판금지 요청을 하지 않았을까.

“책에 관심이 없으니까 처음에는 책 자체를 몰랐을 것 같고…. 이 책이 유명해지자 어느 날 트위터로 책 내용과 소문을 들은 것 같다. 그 다음 날 가장 먼저 트윗한 것이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이었는데, 자신이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인지, 좋은 사람인지를 소개한 것이었다. ‘화염과 분노’는 배포를 막으려고 한 것으로 안다. 그래서 출판을 예정일보다 3일 앞당겼다. (트럼프가 책을 읽긴 할까?) 거의 안 읽을 것 같은데…, 솔직히 자기 자서전인 ‘거래의 기술’조차 다 읽었을지 의문이다. 이 책의 대필 작가인 토니 슈워츠조차 우리 책에 트럼프의 문제점을 기고했다.”

―책의 의도와는 별개로 대중은 트럼프가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정신질환이 있다는 것인지를 궁금해한다.

“우리는 트럼프가 어떤 정신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다. 수십억 명의 생사를 좌우하는 권력을 가진 사람이 명백하게 위험한 정신장애 징후를 보일 때 전문가로서 경보를 울린 것이다. 그래서 그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가질 수 있을 법한 정신질환을 총망라한 정보를 제공했다. (그의 위험성을 구체적으로 표현한다면?) 초등학생이 총을 들고 다니는 것 같다고 할까….”

―그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인가.

“사람이 의사결정을 할 때 논리와 합리에 의한 경우도 있고, 병리적인 양식으로 할 수도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하는 일은 그것을 구분하고, 그 병리적 양식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가 병리적인 의사결정을 한다는 말인가?) Right! 정신장애와 인지적 장애, 심지어 신경학적인 장애까지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엇갈리지는 않나?) 그가 위험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갈리는 부분은 이런 식으로 공개하는 것이 직업윤리에 어긋나느냐 아니냐는 것뿐이다.”

―자기 이름을 비행기에 대문짝만 하게 써 붙이고 다니는 심리는 왜 그런 건가.

“정신과 중 내 전공이 폭력이다. 그래서 내 환자는 모두 폭력범이고 임상을 하는 곳도 교도소다. 그 안에 트럼프와 같은 특성을 보이는 사람이 수천 명 있다. (트럼프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교도소라는 말인가?) absolutely! 트럼프 같은 특성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절대 권력을 갈망하고, 자기를 과시하는 행동을 한다. 보통은 이런 특성들이 사회 내에서 제한되는데 트럼프는 운과 함께 여러 의심스러운 방법으로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했고, 정치적인 힘도 가지다보니 지금까지는 그런 충동에 충실해도 법적인 처벌을 면할 수 있었던 것뿐이다.”
도널드 트럼프의 교사 총기 무장 발언을 비꼰 미국 누리꾼들의 패러디. 위부터 평교사, 도서관 사서, 역사 교사용 총.
도널드 트럼프의 교사 총기 무장 발언을 비꼰 미국 누리꾼들의 패러디. 위부터 평교사, 도서관 사서, 역사 교사용 총.

―지난달 플로리다 더글러스 고교 총기사건 후 트럼프는 총기 규제보다 교사들을 무장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당한 주장인데 실제 플로리다주가 7일 교사를 무장시키는 법을 통과시켰다.

“2012년 28명이 사망한 코네티컷주 샌디훅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때도 워낙 비극적이어서 차라리 교사를 무장시키자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하지만 너무 황당해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정상처럼 여겨지고 있다. ‘악성의 정상성’이 벌어지는 것이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에서 증오범죄와 학교 폭력이 늘었는데 아이들이 ‘대통령이 이렇게 해도 된다고 했다’며 폭력을 가한다. 백인우월주의에 의한 살인도 두 배가량 늘었다. (임기가 반도 안 됐는데?) 1년 조금 됐다….”

―트럼프가 최근 퇴임을 26시간 남긴 앤드루 매케이브 FBI 부국장을 전격 경질해 은퇴 연금 혜택도 못 받게 했다. 이런 행동에 대한 의학적 병명이 있나.

“사디즘(sadism)이다. 남에게 고통을 줌으로써 희열을 느끼는…. 선거기간에도 그런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지자들조차 유혹해 끌어들여, 조종하고 이용하면서 재미있어 하는…. 그는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일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이렇게 사람을 조종할 수 있구나’ 하는 데서 쾌감을 느낀다. 그런 행동이 돈을 벌거나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괴롭히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자주 하지만, 버락 오바마나 힐러리도 안 한 것은 아니지 않나.

“물론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한다. 오바마도 하고…. 하지만 거짓말 횟수를 1년 단위로 세야 하는 사람과 하루는 완전히 다르다.”

―트럼프 하면 전쟁이 연상되지만, 린든 존슨, 부시 부자 등 전쟁을 일으킨 대통령은 많다. 클린턴의 지퍼게이트도 제정신이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유독 트럼프만 더 위험하다고 봐야 하나.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정신장애가 많고, 정도가 심하기 때문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이 ‘정말 너무 우려스럽다’고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명한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뇌중풍, 치매를 앓은 대통령도 있었지만 이것은 일반인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트럼프의 경우 일반 대중은 현재 상태가 의학적으로 문제가 될 만큼 심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그 알기 어려운 정신장애 신호들을 우리 전문가들이 포착한 것이다.”

―그가 확실히 위험하다고 해도, 그 위험을 막기 위한 무슨 방법이 있나.

“고위 공직자나 군 요직에 임명되는 인사들은 그럴 능력이 되는지를 검증한다. 그런데 이들 모두를 관장하는 대통령에게 같은 절차가 없다는 것은 너무 큰 결함이다. 헌법에 폭군이 생겨나지 않게 예방하고, 만약 생기면 끌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지만 현재 정치 상황에서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탄핵도 가능성이 희박하고…. 지금은 가능한 한 모든 법과 제도를 통해 그가 가진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최대한 억제를 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출간 후 트럼프 지지자들의 반발은 없었나.

“일부 지역 신문에서 나와 공저자들을 비판하는 기사가 났다. 개인적으로는 ‘죽여 버리겠다’는 협박을 많이 받았다. 내가 국회의원들에게 트럼프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브리핑을 했다는 뉴스가 나간 뒤 협박 때문에 한 달 동안 학교에 출근하지 못할 정도였으니까…. 사무실 주소, 연락처 등이 다 공개된 상황이었다. 인터넷에는 ‘이 사람을 저격해 살해해야 한다. 그가 트럼프를 공격하기 전에’라는 협박 선동도 있었다. (KKK일까?) 하하하. 한 달 만에 사무실에 나가니 편지와 카드, 꽃 초콜릿 같은 선물이 엄청나게 쌓여있었다. 용기를 내준 데 대해 감사하고 고맙다고…. 또 협박받고 있는 것을 위로한다고…. 트럼프 지지자들의 협박보다 양도 질도 훨씬 감동적이었다.”

―트럼프가 치료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나.

“나는 늘, 환자는 나을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경우다. 지금 트럼프의 정신을 온통 차지하고 있는 것은 공허함이다. 자신이 굉장히 취약하고 약하다는 생각이 내면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채우기 위해 과대포장하고 허풍을 떤다. 끊임없이 다른 나라를 자극하고 핵무기를 언급하는 이유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함으로써 ‘나는 약한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을 계속 확인하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환자의 동의 없이 치료를 강행하는 수밖에 없다. 아예 감금시켜 치료할 수밖에 없는….”

―일반인도 아닌 미국 대통령을 어떻게 감금 치료할 수 있나.

“모르는 일이지만,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안 오리라는 법은 없다. (정말?) 지금 너무나도 불안한 상태인데…, 트럼프가 점점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고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러시아 스캔들 같은 것으로 트럼프가 기소될 위험이 굉장히 농후하다. 만약 기소가 된다면, 그래서 구금이 된다면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트럼프 외에도 푸틴, 두테르테, 시진핑 등 소위 ‘스트롱맨’들이 한 시점에 출현한 게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다. 세계화가 더 고도화되면서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는데, 불평등 자체가 폭력의 한 형태다. 모든 범죄와 병으로 인한 사망을 다 합쳐도 불평등으로 인한 불필요한 죽음이 10배나 더 많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심리적인 변화가 생긴다. 폭력적인 체제가 탄생할 가능성이 훨씬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만약 그게 세계사적 흐름이라면… 트럼프만 막는다고 되는 일은 아닌 것 같은데….

“일단 가장 시급하고 큰 불이니까…. 트럼프로 인해 상황이 더 악화되고 있고…. 지금의 혼란과 무질서에서 트럼프의 부상은 하나의 증상이지만, 다시 원인자가 되고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도널드 트럼프라는 위험한 사례#밴디 리#트럼프 대통령#트럼프 정신상태#화염과 분노#플로리다 더글러스 고교 총기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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