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기자의 對話]“최저임금 결정에 문 대통령 영향? 안 받으면 바보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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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유럽은 기술이 없어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일을 하는 한은 빈곤층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철학이 있다”며 “우리도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는지 내년이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유럽은 기술이 없어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일을 하는 한은 빈곤층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사회철학이 있다”며 “우리도 그런 사회가 될 수 있는지 내년이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제 기자 kjk5873@donga.com
이진구 기자
이진구 기자
《 일주일 후(내년 1월 1일)면 역대 최고라는 최저임금(시급 7530원)이 시행된다. 올해 6470원에서 무려 1060원(16.4%)이 오른 것. 이 때문에 “망하는 중소·영세기업이 속출할 것” “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경영계의 반발이 심했다. 그리고 이 우려는 현재까지도 진행형이다. 과연 며칠 후면 쓰러지는 영세 자영업자가 속출할까. 이번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에 어떤 청사진을 가져올까.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은 “내년 1년간 대한민국의 수준이 어떤지 민낯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최저임금이 역대 최고라는 것은 인상률이 아닌 인상액(1060원) 기준이다. 인상률로는 1991년 18.8%, 2000년 9월∼2001년 8월 16.6%에 이어 세 번째다.) 》
 
―민낯이라니?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부담은 결국 국민 전체가 질 수밖에 없다. 내가 조금 더 내더라도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공동체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는지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왜 국민이 지나? 사업주가 져야 하는 것 아닌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전가되는 방식은 4가지다. 첫째는 근로자. 사업주가 임금 상승 부담을 해고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상쇄하는 경우다. 두 번째는 사업주 자신이 경영효율화든 자기 몫을 줄이든 스스로 감내하는 것. 세 번째가 가장 많은데 가격에 전가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정부가 세금으로 임금 상승분을 지원하는 것이다. 해고나 근로시간 단축을 통한 부담 전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더 어렵게 만든다. 사업주 자신이 감내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민이 십시일반으로 돕는 세 번째, 네 번째가 가장 바람직하다.”

―둘 다 국민이 부담을 지는 것 아닌가.

“그렇다. 임금 상승분이 가격에 전가되면 4000원이던 자장면이 4500원이 된다. 결국 물가가 오른다. 이 때문에 우리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세금을 조금 더 내고, 오른 자장면 값을 기꺼이 낼 수 있는 의식을 가져야 한다. 만약 이런 공동체 의식을 갖지 못해 조세 저항이 심하거나, 인플레이션을 못 견딘다면 그 충격은 최저임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직접 간다. 어느 길로 우리가 갈지 알 수 있다는 의미에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볼 수 있다’고 한 거다.”

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주장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
국회에서 근로시간 단축과 최저임금 인상의 부담을 주장하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오른쪽).


―어떻게 될 것 같은가. 개인적으로는 예상이…


“우울하지만 국민이 부담을 지는 형태로는 안 갈 것 같다. 그럼 결국 영세 자영업자와 그곳에 속한 근로자에게 충격이 다 갈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지금까지 안 그랬는데 갑자기 몇 달 만에 바뀔 수가 있겠는가. 영세 자영업자들은 문을 닫는 곳도 있겠지만 대체로는 영업시간과 종업원 고용 등에서 경영효율화를 모색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화도 방법이고…. 그래서 정부가 이 부분을 명확히 말해줘야 한다. 최저임금의 대폭 상승은 필요하지만 그러기 위해 국민 모두가 물가 인상을 견뎌야 하고, 세금을 조금 더 내야 한다고…. 그런데 시급 1만 원은 말하지만 함께 수반돼야 하는 ‘견딤’은 말하지 않는다.”

― ‘시급 만 원’의 근거가 뭔가.


“2, 3년 전인 박근혜 정부 시절 최저임금이 가장 높게 오르면서 받는 쪽에서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알바천국이 ‘시급 1만 원은 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한 게 그때쯤부터다. 왜 만 원인지에 대한 산출 근거는 없다. 그런데 정치권이 이걸 받으면서 정착됐다.”

―잠깐, 박근혜 정부에서 최저임금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실제 의미가 있는 것은 보통 근로자의 평균 임금 상승률과 최저임금 근로자의 임금상승률 간의 격차다. 이 격차가 있어야 최저임금 인상은 의미가 있다.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일반 근로자의 임금이 오르면 결국 하나도 안 오른 것과 마찬가지다. 노태우∼박근혜 대통령까지 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때가 높았지만 그때는 전체 근로자의 평균임금 상승률도 높았다. 반면에 박근혜 대통령 때는 일반 근로자 임금 상승률보다 매년 최저임금 인상률이 2∼3%포인트가 더 높았다.”

―왜 ‘뜻밖인데’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나도 그 통계를 보고 뜻밖이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매년 최저임금을 7∼8% 올렸는데, 시중 임금인상은 4∼5%였다. 그만큼 더 준 것이다. 3, 4년 전부터 이 때문에 기업들이 압박을 받아온 것은 사실이다. 단지 보수정권이다 보니 경영계가 강하게 말하지 않은 것뿐이지…. 그러다가 이번에 왕창 올리니까 이제는 ‘악’ 소리가 나온 것이다.”

―경영계는 그렇게 힘들다지만 믿는 국민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대기업은 엄살이다. 임금 상승 부담을 물건 값에 전가하거나 하청업체를 쥐어짤 수 있기 때문이다.”

―결정 과정에서 인상 효과에 대한 제대로 된 자료가 없어 막연한 찬반 논쟁만 되풀이됐다. 1988년부터 시작했는데 왜 효과를 분석한 자료가 없나.

“처음 이 제도를 시작할 때는 필요한지 아닌지를 파악해야 하니까 어마어마한 조사를 했다. 하지만 이후에는 100원, 200원 정도로 얼마 안 되게 올리니까 큰 신경을 쓰지 못했다. 1000가구 정도 샘플 조사한 게 있기는 한데 표본이 적어 신뢰할 수는 없다. 통계마다 다르지만 최저임금 대상자가 300만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래서 이번에 제도개선연구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함께 노동 관련법 개정 요구 집회를 하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최저임금 1만 원 인상과 함께 노동 관련법 개정 요구 집회를 하고 있다.


―내년 시급 7530원이 엄청나게 오른 것이라고 하는데, 실제 강남에서는 이미 시급 8000원 이상인 곳이 많다.

“서울 서초구 교대 인근의 호프집에 갔는데 여기는 올해 법정 시급이 6470원인데 이미 8000원을 주고 있었다. 그 정도 안 주면 아르바이트생을 못 구하고, 또 다른 데 간다고…. 일도 잘하고 서비스도 잘하는 좋은 사람을 구하려면 그 정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주인이 부담은 없다고 하던가?) 이미 아는 거다. 그 정도는 줘야 한다는 걸…. 그걸 다 포함해 장사를 하는 것이고·…. 강남에서 한정식집 같은 고급 음식점은 이미 시간당 1만 원이었다.”

―그들도 이번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을 받을 것 아닌가.

“이번 인상액인 1060원 다는 아니더라도 600∼700원 정도 더 오르지 않을까 한다. 그러면 주인은 치킨 값을 올리든지, 영업시간을 줄이든지 방법을 찾을 것이다. 경영계와 언론에서는 영세 자영업자를 다 하늘만 쳐다보는 바보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이들은 수입·지출은 물론이고 어디가 낭비 요인인지 다 안다. 힘든 곳도 있겠지만 일단 불필요한 낭비를 줄이기 시작할 것이다. 호프집이 낮에 문을 열 필요는 없지 않을까? 배달만 하는 음식점, 배달은 안 하는 음식점으로 구분될 수도 있고…. 이게 구조조정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지 않았다면 이런 대폭 인상이 가능했을까.

“불가능했지. 당연하다. (잉?) 그 질문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 정권의 정책방향에 영향을 받지 않았느냐고…. 안 받는 게 이상하고 바보인 것이다. 결정할 때 고려 사항들이 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물가, 생계비 등등. 이와 함께 중요한 게 정부 정책이다. 정부 정책이 내년에 어디로 가는지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개인적으로는 얼마만큼 올리고 싶었나.

“개인적으로는 10% 이상이면 된다고 생각했다. 650∼700원 이상. 그런데 경영계가 7300원(12.8%)을 제시해 깜짝 놀랐다. 그래서 물었다, ‘너희들 왜 그러느냐’고. 경영계는 늘 최저임금 동결을 주장했으니까…. 역시 정부 정책이 영향을 준 것이지…. 그래서 그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자유투표를 한 거다. 경영계 안이 통과돼도 문제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자신들이 써낸 7300원에서 불과 230원 더 올랐는데 왜 지금까지 국회를 찾아가서 부담이라고 반발할까.


“그러니까 신의가 없는 거지. 스스로 써내놓고…. 이미 12.8%를 제시해 놓고 그 차이만큼만 부담이 된다고 하면 모르겠는데 16.4%를 부담이라고 하니까….”

―최저임금 제도는 딜레마적 성격이 있다. 실제로 장사가 안 돼 최저임금도 못 준다면 낮은 임금이라도 받는 게 나은가, 아니면 폐업을 시키더라도 최저임금을 강제해야 하나.

“공권력이 깊숙하게 들어갔을 때의 부작용을 말하는 건데…. 부작용에 대한 아무런 증거도 없이 ‘망한다’ ‘노사가 자율적으로 합의한 것을 왜 국가가 개입하느냐’고 하는 것은 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말이다. 최저임금은 얼마든지 노사 자율로 합의하지만 이 이하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최저임금은 싼값에 사람을 쓰는 레이버 덤핑(labor dumping)을 막는 제도다. 일자리의 절대수가 부족할 경우에는 이를 눈감아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정말 그런지는 따져 봐야 한다.”

―통계 수치가 없나.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근로자 수가 지금 전체 근로자의 12% 내외라고 나오는데…. 통계가 너무 부풀려 있다고 생각한다. 선진국은 약 2∼4%라고 하는데 실제로 우리가 12%라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아니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잘 모르고 대답하는 경우도 많고, 일하는 시간을 집 나갈 때부터 들어올 때까지로 대답하기도 하고…. 일단 나는 12%는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년 최저임금이 우리 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우리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임금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져 있다. 이걸 사회통합 차원에서 줄여야 하는데 여기에 최저임금이 과연 효과가 있느냐는 논쟁이 있다. 유럽에서는 최저임금이 높은 것을 당연시한다. 기술이 없어서 단순노동을 하더라도 일을 하는 한은 빈곤층이 돼서는 안 된다는 사회철학이 있다. 이게 모든 정부 정책의 기본 철학이고, 그래서 국민 각자가 돈을 더 내더라도 함께 가자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경쟁력 논리에 매몰된 부분이 많다. 어디로 갈지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2018 최저임금#최저임금 제도#레이버 덤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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