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즈위슬랏의 한국 블로그]“빵빠앙” 오늘도 도로 교향곡이 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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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지난달 네덜란드 여행을 다녀왔다. 내가 태어난 도시인 레이던에서 뭔가를 봤다. 별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한국에서 살아온 나에게는 작은 기적처럼 느껴졌다. 좁은 골목에 트럭이 서 있었다. 남자 몇 명이 제품을 싣고 내리고 있었다. 골목에는 트럭을 추월할 틈이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트럭 뒤에 자동차 서너 대가 한 줄로 서 있었다. 지금까지는 대수롭지 않게 들릴 것이다. 작은 기적이 뭐냐면 기다리는 차들이 경적을 울리지 않았다. 기다리는 운전자마다 갈 데가 다 있을 텐데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다. 서울에서 이 같은 일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거대 도시 서울에서는 매일 많은 자동차 경적의 불협화음을 듣는다. 하도 익숙해져 이따금 그 불협화음이 교향곡과 유사하지 않나 싶을 정도다. 앞차가 느리게 가거나 갑자기 서거나 옆길에서 차가 느닷없이 도로에 진입할 때 ‘빵빠앙∼’ 소리가 울린다. 그 소리에 분노와 답답함, 급함 등이 담겨 있다. 그렇지만 꼭 이래야만 할까. 한 번 경적 소리의 좋지 않은 효과를 살펴보려고 한다.

①일단 소음공해로 이어진다. 우리 아파트 창문을 여름에 열어 놓으면 길거리에서 끊임없이 자동차 소리가 들려온다. 차 엔진의 어느 정도 낮은 ‘우르릉’거리는 소리는 참을 수 있지만 클랙슨 소리는 너무 시끄럽다.

②스트레스 수준이 폭넓게 높아진다. 경적을 특정한 대상에게만 듣게 할 도리가 없어 모든 사람이 듣는 순간 자극을 받는다. 엉뚱한 사람이 ‘내가 뭘 잘못했나’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③도움이 안 된다. 클랙슨을 울려도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더 빠르게 갈 수도 없고 잃어버린 시간을 다시 찾을 수도 없으며 기분이 좋아지지도 않는다.

④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상황을 괜히 악화시킬 수도 있다. 말다툼이 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2015년 6월 언론에는 이런 사건이 보도됐다. 한 자동차 운전자가 다른 운전자에게 화를 내고 클랙슨을 울렸는데 뜻밖에도 오토바이 운전자가 자기를 겨냥하는 줄 알고 일부러 길을 막고 심리전을 벌였다. 심지어 몇 달 전에는 광주에서 자동차 클랙슨 시비가 집단폭행으로 번지면서 한 명이 숨지기도 했다.

네덜란드에 사는 사촌동생에게 ‘왜 네덜란드 운전자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경적을 울리면 벌금을 내야 한다고 했다. 네덜란드와 ‘도로교통에 관한 빈 협약’을 적용하는 나라들은 두 가지 경우에만 경적을 허용한다.

①교통사고를 피하려고 하거나

②도심 밖에서 상대방 운전자에게 곧 추월하겠다는 사실을 알릴 때이다.

특히 도심에서 경적을 울리면 벌금이 부과된다. 한국에서는 어떤가. 도로교통법 제46조의 3과 제49조의 1.8다에 따르면 ‘반복적이거나 연속적으로 경음기를 울리는 행위로 정당한 사유 없는 소음이 발생한다’면 ‘난폭운전’으로 여길 수 있다. 따라서 같은 법 제151조의 2(벌칙)에 따르면 해당 운전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뉴스를 검색하면 벌금을 매기는 실제 사례가 있긴 하다. 그런데 많지는 않다. 어쨌든 아직 서울의 교통문화를 바꾸는 데는 미흡하다. 왜냐하면 운전자들이 여전히 별생각 없이 쉽게 클랙슨을 울리기 때문이다. 벌금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없을 것 같다. 오히려 벌금이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놀랄지도 모른다. 물론 서울은 레이던이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다. 레이던은 서울보다 인구가 훨씬 적다. 하지만 일본 도쿄도 서울에 비하면 도로가 훨씬 조용하다. 경적 소리를 듣는 것은 매우 드물다. 서울이 레이던, 도쿄보다는 신나고 흥미진진한 도시라는 주장은 어느 정도 맞다. 그래서 살 만하다. 하지만 함부로 사용하는 경적이 초래하는 스트레스를 조금 줄인다면 어떨까.
 
재코 즈위슬랏 호주 출신 법무법인 충정 이사
#자동차 경적#소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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