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미운 오이’ 다시 보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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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온 나라가 가뭄을 겪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말라비틀어진 작물을 자기 살을 베어 내듯 갈아엎어야 합니다. 하지만 마트에 가면 때깔 좋고 오뚝한 꼭지에 크기가 모두 균일한 과일과 채소가 진열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예쁜’ 농산물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현대적 생산과 유통 구조 덕(?)에 우리는 잘생긴 농산물을 매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못생긴 농산물은 없을까요? 물론 있습니다. 가뭄과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도 성실한 농부의 보호 아래 살아남아 풍부한 영양분을 담고 있는 못생긴 농산물이 많습니다. 전체 농산물의 20∼30%가 못생긴 농산물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유통 처리 과정에서 걸러져 폐기된다고 합니다.

길쭉길쭉 날씬한 오이가 아니라 초승달처럼 고부라진 오이, 작은 혹이 꼭지 옆에 달린 토마토, 끝 부분이 두 다리처럼 갈라진 홍당무, 한 꼭지에 세 몸이 붙어있는 딸기, 유통 기준의 크기에 못 미치는 작은 채소와 과일 등이 있습니다. 이들은 폐기 대상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에게 ‘미학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합니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관습적 판단이 농산물 폐기 대상을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미적(aesthetic) 판단이 경제가치적 판단에, 나아가 영양학적 판단에까지 절대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미적 판단이란 감각학적 판단을 뜻합니다. 감각을 통해 얻은 정보를 두뇌가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못생긴 농산물을 거르는 작업은 시각적 판단을 기준으로 합니다. 그러니까 시각적 판단이 다른 감각적 즐김, 즉 후각적, 미각적 즐김의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아름다움에 대한 시각적 판단이 일상의 다른 영역에까지 넓게 영향을 미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특히 시각에 의한 미적 판단이 가치적 판단으로 즉각 전이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우리가 오늘날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과도 밀접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각을 ‘감각 중의 감각’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시각을 잘 활용하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려면 시각의 특성을 잘 알아야 합니다. 시각은 다른 감각들, 즉 청각, 후각, 미각, 촉각에 비해 ‘감각적 수용력’이 매우 높습니다. 우리는 시끄러운 소리를 계속 듣지 못하고, 특별한 냄새와 맛에 즉각 거부감을 느끼며, 촉각적 자극에 아주 민감합니다. 하지만 시각은 거부감을 느꼈던 대상도 지속적으로 볼 수 있으며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감각학적 관점에서 미와 추의 구분은 우리가 시각적으로 대상을 얼마나 수용하는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감각이 수용하면 아름답고 그러지 못하면 추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미와 추는 서로 대칭적이지 않습니다. 미의 영역이 추의 영역에 비해 훨씬 넓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미와 추는, 음과 양같이 ‘대칭적 이원성’의 관계가 아니라, ‘비대칭적 이원성(asymmetric duality)’의 관계에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아름다운 것들이 많습니다. 추하다고 느꼈던 것도 미의 영역으로 무리 없이 옮겨 올 수 있습니다. 길버트 체스터턴의 말이 생각납니다. “우리가 관습적인 아름다움이라는 주술을 툭 끊어버리는 순간,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얼굴들이 온 사방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온 사방에 무수히 많은 아름다운 영혼들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미에 대한 관습적 판단의 관점을 바꾸면, 길쭉길쭉 날씬한 오이보다 고부라진 오이를 초승달 같은 아름다움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의 전환은 인간관계에도 당연히 해당됩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가뭄#농산물#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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