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꽃들의 시샘’에서 배울 것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꽃이 피고 있습니다. 한때는 꽃들이 순서에 따라 피었습니다. 매화가 피고 개나리가 피면 곧 진달래가 필 것을 기다렸고, 진달래가 질 때쯤이면 벚꽃이 피고 지고 이어서 철쭉의 개화를 기다렸습니다. 꽃이 피는 순서에 따라 봄의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봄의 서사’가 있었던 겁니다. 피는 꽃 하나하나가 자연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미의 형식’이라면, 요즘은 자연의 예술에 서사 없는 형식이 난무하는 듯합니다.

지구의 기후변화에 꽃들이 점점 더 혼미해진 모양입니다. 그래도 꽃들은 성실하게 자연이 자신들에게 부여한 의무를 다하고 있습니다. 순서 없이 모두 함께 피다 보니 꽃들이 동시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다른 꽃들을 시샘하여 자신을 더욱 뽐내기 위해 애쓰는 것 같습니다.

꽃들이 서로 경쟁적으로 피는 것을 보면, 꽃들은 시샘도 참 잘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로 남보다 낫게 피려고 다툴 뿐이기 때문입니다. 맞서 애를 쓸 뿐이기 때문입니다. 꽃들이 이렇게 애쓰기 때문에 봄의 산천은 온통 성실한 에너지로 가득합니다. 성실한 만큼 꽃들의 시샘은 건강합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다 공연히 미워하게 되고, 그러다가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꽃들은 어서 나도 아름답게 피어야지 하고 서두르기도 하며, 서두르다가 때를 앞질러 피어나 궂은 날씨에 손해를 좀 보는 일도 있습니다. 그래도 남을 괜히 싫어하지 않습니다. 미워하지도 않습니다. 미워해서 꾸미는 음모도 없습니다. 그저 자신의 개화에 열중할 뿐입니다. 꽃들이 시샘해서 하는 일이라곤 자신의 성장뿐입니다.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뿐입니다. 꽃들은 자기 성숙으로 경쟁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은 어떠한가요. 시기심은 인간의 본성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남을 시기하는 방식들은 건강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세상을 성실한 에너지로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소모적 경쟁의 찌꺼기로 오염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인간의 시기는 남보다 낫게 되려고 맞서 애쓰기보다는 종종 어떻게 하면 남을 깎아내릴까 하는 마음에서 상호 소모적이 됩니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입니다. 남이 잘되는 것을 부러워하다가 그것이 지독한 증오가 되기도 합니다.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것까지는 좋으나, 맞서 노력하는 게 아니라 음모를 꾸미기도 합니다.

“시기심 가득한 사람은 물기는 잘해도 먹을 줄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남을 해치기는 하지만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한다는 말이지요. 이런 시기심은 자신의 성장을 위한 영양분을 공급하지 못합니다. 이런 시기심은 꽃들의 건강한 시샘과는 반대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더구나 시기심이 개인 차원에서 사회·정치적 차원으로 이전되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서로 능력을 겨루는 것이 아니라, 남을 음모하고 깎아내리는 ‘시기심의 전략화’가 일반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회와 정치는 건강하지 못합니다.

시기심은 공동체 건강의 중요 척도일지 모릅니다. 공동체의 고혈압 지수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혈압을 정상으로 유지하는 방법은 적절한 운동이라고 합니다. 때에 따라 혈압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시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는 없겠지요. 하지만 운동을 해서 혈압을 조절하듯, 자기 능력을 키워 시기심을 건강한 시샘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화려한 봄날 경쟁적으로 피어나는 꽃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아닐까요.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꽃#지구 기후변화#인간의 시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