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하늘 아래 새로운 것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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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많이 들어온 말입니다. 일견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 같고, 희로애락의 우리 일상사도 되풀이되는 것 같습니다. 전철을 밟는다는 말이 있듯이, 정치·사회적으로 잘못된 일이나 행동도 팬 수레바퀴 자국을 그대로 따라가듯 또다시 일어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인문학자들이 이 금언을 강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옛 성현들의 지혜 속에 이미 오늘날 우리 삶의 교훈들이 담겨 있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도덕적 명제들 역시 수천 년 동안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이는 오늘날 시대의 과제가 된 창조의 영역에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인간의 창조행위도 뭔가 새롭게 만들어낸다기보다 기존의 것들을 다시 조합하고 재구성하거나 편집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합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정말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꼭 그럴까요? 이런 의심이 드는 건, 이 주장에 ‘오만’의 기운이 비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태만’의 기미도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오만하다 함은 하늘 위에서 하늘 아래를 내려다보며 하는 말 같아서입니다. 천상에서 보면 천하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새로울 게 하나도 없습니다. 손바닥 보듯이 세상을 꿰뚫어 보는 조물주에게는 모든 것이 천지창조의 계획안에 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늘 아래 살고 있는 사람이 이런 말을 하면, 천상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까지는 아닐지라도 세상사에 달관한 듯한 시선을 느끼게 됩니다.

 태만하다 함은 세상사에서 ‘차이’를 보고자 하는 의지가 결여되어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반복되는 것 같은 역사 속에서도 시대에 따라 사건의 엄밀한 차이들이 있으며, 그 차이를 보는 것이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는 방법입니다. 인간이 기술한 역사는 법칙이 아니라, 그 역사적 자료가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해서 현재와 미래를 새롭게 볼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소중한 것입니다.

 고전의 샘에서 목을 축이고, 그 풍요한 샘에 몸을 담그는 기회는 우리 삶에서 소중하고 유익합니다. 하지만 그 샘에 빠져버리면 삶을 놓치게 됩니다. 고전은 변하지 않는 삶의 지침들을 모두 담고 있어서 우리가 떠받들어야 할 경전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해 그 내용을 걸러내 활용하는 훌륭한 참고자료일 뿐입니다.

 물론 인간은 신이 아니므로 ‘무(無)로부터 창조’할 수 없습니다. 문화적 유산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활용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습니다. 이는 적당한 조합과 재구성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은 중세 때부터 내려오는 ‘거인들의 어깨 위에 서서’라는 금언입니다.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도 거인들의 어깨 위에 오르기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거쳐 ‘더 멀리 볼 수 있었고’ 과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었습니다. 창조는 지난한 노력의 과정 그 어느 순간에 주어지는 고귀한 보상과 같은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새로움은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에 확인됩니다. 부모의 존재가 아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지만, 그 아이는 이 세상에 창조적 새로움으로 등장하는 것입니다. 새 생명이며,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존재인 것입니다. 일상의 변화에서 새로움을 느낄 줄 아는 감성과 지혜가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일상의 시간도 새로움을 가져옵니다. 100세를 사신 분에게도 2017년은 새로운 한 해인 것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 많다’라고 할 때 삶은 능동적이고 활력으로 넘칠 수 있습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금언#일상#교훈#오만#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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