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석의 일상에서 철학하기]뇌물과 선물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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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올해로 출간 500주년이 되는 ‘유토피아’의 저자 토머스 모어는 영국의 고위 공직을 두루 지냈습니다. 또한 청렴한 공직자로서의 일화들을 그의 저서 못지않게 소중한 문화적 유산으로 남겼습니다. 모어는 ‘뇌물’을 결코 받지 않았지만 ‘선물’에 대해서는 당시 사회 관습에 반하지 않도록 처세의 지혜를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법관으로서 백성들의 송사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때론 가난한 농민들이 판결에 감사하는 뜻으로 구운 감자나 사과파이 같은 선물을 가져왔는데, 그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을 생각해 물리치지 못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부인이 병상에 있는 남편의 송사에서 올바른 판결을 해줘 고맙다는 뜻으로 모어에게 도금한 컵을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부담스러운 선물에 모어는 기지를 발휘해서 그 컵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선물한 사람의 건강을 위해 건배를 한 후 컵을 돌려주었습니다.

 한 번은 어떤 미망인의 송사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공정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 부인은, 마침 신년을 맞이할 때였기 때문에, 모어에게 장갑 한 켤레에 제법 큰 액수의 금화를 넣어 선물했습니다. 모어는 장갑은 받고 돈은 거절했습니다. “부인, 숙녀의 새해 선물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므로 부인께서 주신 장갑은 고맙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부인의 돈은 전적으로 사절합니다.”

 언젠가 모어는 또 한 번 도금한 컵을 새해 선물로 전달받았습니다. 모어는 그 컵의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모양은 별로지만 값어치로 보면 더 비싼 자신의 컵을 대신 그 주인에게 돌려주도록 심부름꾼에게 보냈습니다.

 이 일화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모어의 일화들이 뇌물은 물론이고 어떤 선물도 절대 받지 않았던 사람의 이야기라면 덜 흥미롭겠지요. 이 일화들은 인간적 고민의 흔적을 담고 있습니다. 어떤 학자는 모어의 이런 태도를 “무례하지도 않고 부정을 저지르지도 않도록 그 둘 사이에 놓인 줄 위를 곡예하듯 걷는 것”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모어는 공직, 특히 법관이라는 자리가 유혹이 많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그 권력이 크든 작든,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항상 부패의 가능성을 지니고 있음을 철저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권력은 권력을 가진 자를 부패시킨다”는 격언이 있듯이, 부패의 가능성은 권력의 항구적 본질이기도 합니다.

 모어는 또한 인간이 작은 욕망에도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자기 수양을 게을리하지 않고, 구체적인 일 앞에서 지혜와 기지를 발휘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선의를 가진 사람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데도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무엇보다도 권력과 욕망이 쉽게 결합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곧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 시행됩니다. 법률 제안에서 시행까지 논란이 많았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법은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 법적 차원 이상으로 도덕적 차원에서 의미 깊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공직자들이 아무 생각 없이 또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나아가 생각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고 청탁과 금품을 받아온 ‘관행’이 없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법률 자체의 세세한 내용보다 그것이 우리 의식의 변화를 위한 계기가 된다는 점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법률은 도덕적 변화의 계기가 될 때 더 큰 의미를 획득하며, 삶의 지혜를 키워가는 동기로 삼을 때 더욱 효과적입니다.
 
김용석 철학자·영산대 교수
#유토피아#토머스 모어#뇌물#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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