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우리가 우주 탄생에 몰입하는 까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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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중력파 탐지說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최근 중력파 탐지 소문이 불거졌다. 8월 18일 미국의 한 과학자가 트윗으로 중력파 탐지 소식을 알리고, 다른 과학자가 리트윗을 하면서 소문은 불붙기 시작했다. 처음 트윗을 한 과학자는 너무 서둘렀다며 나중에 공개 사과를 했다. ‘네이처’ 등 미국 주요 과학 사이트들은 이에 대한 내용을 소개했다.

2015년 9월 첫 중력파 발견 때도 여러 과학자가 트윗을 통해 “라이고(LIGO·레이저 간섭계 중력파 관측소)가 중력파를 검출했을지 모른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데이터 검출 이후 분석하고 검증해 2016년 2월에 정식으로 발표하기까지 6개월이 훨씬 더 걸렸다. 중력파 검출이 확실하지 않은 시점에서 무성한 소문들은 혼란을 줄 수 있다.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다. 유력한 데이터라고 라이고가 밝히긴 했지만 최종 판단을 하기까진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 우리는 과학적 발견이 받아들여지는 과정에 주목해야 한다. 2014년 공표된 중력파는 결국 우주 먼지로부터 발생한 신호임이 드러난 적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과학자들을 들썩이게 했을까? 인류는 저 먼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다. 또한 너무나 까마득한 과거에 과연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 중력파가 포착되면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의 변화, 우주의 초기 급팽창 증거를 찾으며 천체물리학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1초(혹은 그 미만)에서 1분 정도 측정되는 중력파는 중성자별의 기원 등 많은 단서를 제공한다. 빛은 빅뱅 후 38만 년 후에나 우주의 역사에 등장했다. 빛은 시공간의 한계 등 때문에 한정된 정보를 제공한다. 하지만 시공간을 넘나드는 중력파는 빅뱅 직후 찰나까지 드러내며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수 있다.

중력파는 우주가 출렁이면서 시공간이 뒤틀리며 발생하는 일종의 잔물결(파동)이다. 원인은 질량이 어마어마한 블랙홀이나 중성자별의 충돌이다. 첫 중력파는 13억 년 전 태양보다 훨씬 무거운 두 블랙홀이 충돌하고 합쳐지면서 0.15초 동안 발생한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번엔 블랙홀보다는 중성자별의 합병이나 거대 별의 폭발 후 잔재와 같이 다른 우주의 대격변으로 생긴 파장이길 기대하고 있다.

어릴 적 친구들과 동네에서 방방 뛰던 트램펄린을 떠올려보자. 한 아이가 평평한 고무판에서 뛰면 주변의 다른 아이들 몸도 덩달아 출렁인다. 하나의 충격(중력)이 파동처럼 옆에 있는 아이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 경우 거리와 무게는 직접 큰 영향을 끼쳤다. 트램펄린을 우주 전체라고 생각하고, 중성자별을 아이들이라고 비유해보면 잔물결이 지구에까지 도착한다. 물 표면에 돌을 던졌을 때 일어나는 파동이나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미묘한 긴장감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중력파는 질량이 있는 물체 사이의 끌어당기는 힘에서 출발점을 찾을 수 있다. 아주 큰 천체가 있는 우주뿐 아니라 질량이 있는 사람이나 자동차 등에서도 중력파는 나온다. 허나 질량이 작으면 중력파는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미세하다. 1915년 아인슈타인은 이미 공간의 기하학으로서 중력파를 이론적으로 예견했다.

중력파 탐지는 전 세계 1000여 명의 과학자가 협업하며 참여 중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와 워싱턴주에 있는 라이고와 이탈리아 피사의 비르고(Virgo)에서 이번 중력파 데이터 수집 작업이 종료되었고 이를 검토 중이다. 과학자들은 레이저가 간섭되는 영향을 살펴 공간이 늘어나거나 수축되는 차이를 감지한다. 예비 분석으로 유망한 중력파 후보들이 발견되기는 했지만 유력한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이번 중력파의 진원지는 히드라 별자리 남쪽에서 약 1억3000만 광년 떨어진 NGC 4993이라고 불리는 은하다. 이미 전 세계 망원경들은 같은 은하를 주목하고 있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은 중성자별 충돌 때 발생하는 감마선 버스트, 즉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고에너지 감마선이 지구에 쏟아지는 현상을 탐지해냈다.

지구의 파도와 바람이 만들어내는 음파는 잡음이라서 중력파 검출에 방해가 된다. 곳곳에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다양한 물질들과 비중 역시 걸러내야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방해가 되는 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의 섣부른 추측과 판단이 아닐까. 익명의 한 과학자는 SNS 확산 전부터 중력파 탐지 소문이 은밀히 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유력한 발견을 공유하고픈 마음은 이해하나 중력파 검출에 방해가 되는 잡음은 발생하지 않는 게 더 낫다.

김재호 과학평론가
#중력파 탐지#네이처#라이고#중력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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