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호의 과학 에세이]뉴트리아 잔혹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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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재호 과학평론가
김재호 과학평론가
최근 뉴트리아가 화제다. 국내 연구진이 20마리의 뉴트리아 담즙을 분석한 결과 우르소데옥시콜산(UDCA) 성분 비율이 평균 43.8%로 나타났다는 보도 이후다. 이는 곰이나 오소리의 담즙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다. 하지만 기생충이나 바이러스 감염 등이 우려되고, 독성 실험이나 일상 실험을 아직 거치지 않았다.

뉴트리아는 이름이 참 많다. 외래생물, 모피 및 식용 친환경 가축, 강쥐, 물쥐, 왕쥐, 늪너구리, 민물물개, 괴물쥐, 생태계교란종, 웅담쥐 등. 뉴트리아는 어쩌다 한반도까지 건너와 미움과 관심을 동시에 받고 있는 것일까.

뉴트리아는 ‘코이푸’라고도 불리는데, 스페인어로는 수달 혹은 수달의 가죽을 뜻한다. 뉴트리아는 북미나 아시아, 옛 소련 국가들에서 쓰는 이름이다. 따라서 라틴아메리카와 유럽에선 코이푸라고 부른다. 독일, 이탈리아나 스웨덴에선 비버쥐, 작은 비버, 습지비버 등으로 불린다.

뉴트리아는 주로 남미에서 서식하는 포유류다. 즉, 따뜻한 곳에서 생활하는 녀석인데 우리나라에 오면서 사시사철 환경에 적응했다. 뉴트리아는 쥐목(目)에 해당하지만 쥐는 아니다. 인간이 영장목에 해당한다고 고릴라나 원숭이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뉴트리아는 뉴트리아과(科), 뉴트리아속(屬), 뉴트리아종(種)이다. 뉴트리아는 뒤 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으며 잡식성이다. 수달은 앞뒤 발가락 사이 모두에 물갈퀴가 있고 어류를 먹는다. 한국에서 뉴트리아는 생태계교란종이고, 수달은 천연기념물로서 멸종위기종이다. 뉴트리아는 최장 6년까지 살 수 있지만 3년 넘게 사는 경우는 흔치 않다. 3, 4개월이 지나면 새끼를 가질 수 있고, 암컷은 130일 동안 임신해 1년에 3번, 13마리까지 낳을 수 있다. 대개 4∼9kg, 40∼60cm의 몸 크기에 30∼45cm의 꼬리를 갖고 있다.

뉴트리아는 1980년대 중후반, 모피와 식용으로 100여 마리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하지만 반응이 시큰둥하자 사육농장에서 더 이상 기르지 않았다. 이후 낙동강에 유입된 뉴트리아는 생태계를 교란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젠 포획되면 2만 원에 팔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생태계교란 생물들 중 뉴트리아는 유일한 포유류다. 현재 환경부가 고시하는 생태계교란 생물은 20종(큰입배스, 파랑볼우럭, 황소개구리, 꽃매미, 가시상추, 도깨비가지 등), 위해우려종은 98종(피라냐, 유럽비버, 가짜지도거북, 웃는개구리 등)이다. 생태계교란 생물은 이미 국내에 들어온 것이고, 위해우려종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생물이다. 국내에 있는 외래생물은 2167종(동물 1833종, 식물 334종)이다. 외래생물 중엔 어류가 887종으로 가장 많다. 모든 외래생물이 위험한 건 아니다. 감자나 고구마, 고추, 목화, 고무나무, 블루베리 등은 국내에 안착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귀화종이다.

생태를 교란한다는 것은 원래 그 지역에 있는 토착종을 멸종시킨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회색다람쥐는 유럽, 특히 영국에서 외래 침입종으로 분류돼 악명을 떨치고 있다. 회색다람쥐는 붉은색다람쥐한테 다람쥐수두바이러스를 퍼뜨린다. 붉은색다람쥐는 이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없다. 생태계교란은 동물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뉴질랜드의 겨우살이는 서식지 소실로 사라졌다. 모피 제작을 위해 호주에서 털꼬리주머니쥐를 데려왔기 때문이다. 이 쥐들이 겨우살이를 다 먹어 치웠다. 꽃매미는 나무에 들러붙어 수액을 흡수한다. 이로 인해 그을음과 마름병을 유발해 포도나무, 가죽나무, 버드나무가 말라죽는다.

뉴트리아가 한국에 들어와 생태계를 교란하는 동안 한국의 잉어와 가물치는 미국으로 건너가 호수를 휘젓고 다닌다.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고유종이 외국에 나가면 생태계교란종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물론 외래종은 고유종과 경쟁하며 토착 생태계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생태계를 교란하는 외래종을 차단하기 위해 여러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그중엔 비인도적인 방법도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뉴트리아의 경우 항문을 막아서 서로 물어뜯게 하고, 심지어 자식까지 죽이게 한다는 것이다. 한편 러시아나 유럽에선 뉴트리아로 만든 버거가 식당에 나오고 있다.

호기심 혹은 상업적 목적으로 들여온 외래생물들. 토착지를 잃어버린 생물들은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위해 죽기살기로 덤빈다. 이러한 외래생물들에게 인간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수수방관하거나 잔인한 인간 본성을 드러내고 있는 건 아닐까.

김재호 과학평론가
#뉴트리아#우르소데옥시콜산#생태계교란 생물#외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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