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 인 컬처]개저씨-밧줄 설현-국뽕 영화… 화제만큼 논란도 많았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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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별 요원들 지상 송년토론

 ▶수신=맨&우먼 인 컬처 관리국 은하계 지부장
 ▶일시=우주력(스타데이트) 9521.6
 ▶장소=지구 베이스캠프03187(서울 종로구 청계천로1)
 ▶발신=지구탐사요원 전원(코드명: SES 컴백)
 ▶제목=2016 지구문명 탐사 결산 회의록(2급 기밀)


 ▽에이전트2=요원들, 바쁜 와중에 귀한 시간 내줘서 고맙네. 일단 회의에 앞서 잠시 추도 시간을 갖지. 영화 ‘스타워즈’의 영원한 영웅 ‘레아 공주’(캐리 피셔)를 위해. 일동 묵념.

 ▽에이전트5=추도도 좋은데 은퇴한 나까지 왜 부른 거지?

 ▽에이전트23=오 씨, 말조심해. 못 본 사이 ‘개저씨’ 다 됐네. 스톡홀름 신드롬이야 뭐야. 하긴, 우리 요원 탐사과제 중 가장 반응이 뜨겁긴 했지. 중년 남성들의 빗발치는 항의도 쏟아졌고. 폭탄메일 받고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었지.

 ▽에이전트9=용두사미(龍頭蛇尾)는 우리 전통인가 봐. ‘우먼 인 컬처’도 첫 임무였던 야시시한 여성 게임캐릭터가 제일 시끄러웠어. 논란이 됐던 아이템을 보면 대부분 성(性) 역할과 관련된 이슈들이야.

 ▽에이전트41=최근 흐름을 반영한 게 아닐까 싶어. 촛불집회에서도 DJ DOC의 ‘수취인분명’이 결국 무대에 오르지 못했잖아. ‘남성혐오’ ‘여성혐오’란 딱지가 붙으면 격렬한 찬반논쟁이 벌어지곤 하지.

 ▽에이전트7=진짜 그러네. ‘설현의 밧줄 광고’ 등 남녀 시각차가 뚜렷하게 갈리는 경우가 많았어. 한국 사회가 이런 문제를 어떻게 소화하는지 살펴보잔 의도였는데 전달 능력이 부족했나. 화두를 던져도 민감하게만 반응하는 건 좀 아쉬웠어.

 ▽에이전트31=그래도 그때그때 관심사를 들여다보려는 노력은 성과를 거뒀다고 봐. 박유천 사건이 터졌을 때 스타와 팬덤의 관계를 짚은 거라든지, ‘혼밥혼술족’이 화제였을 때 직접 체험에 나섰다든지. 본부에서도 확실히 그런 주제에 반향이 컸었지.

 ▽5=의외로 반응이 적어 당황하기도 했지. 가상현실(VR) 에로물 체험(6월 8일)은 야심 차게 공 많이 들였는데, 영…. ‘기러기 아빠’(8월 10일)는 부모로 가장하고 유학알선업체에 찾아가서 상담까지 받았었지?

 ▽2=응. 차림새가 꾀죄죄했는지 자꾸 무시해서 열불 났었어. 반대로 예상보다 피드백이 훅 들어와서 놀라기도 했어. 영화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본 ‘국뽕’은 너무 식상한 레퍼토리 아닌가 걱정했는데 여전히 논란이 거세더라고.

 ▽31=성역할 이슈 다음으론 확실히 연예인 관련 주제들이 많이 회자되더군. 설현 박유천을 포함해서 ‘설리 현상’ ‘군복 신드롬’에 ‘말실수’ ‘인천…’까지. 톱10에 들진 않았지만 ‘프로듀스101’(3월 2일) ‘AOA 술자리 인터뷰’(3월 30일) ‘걸그룹 전성시대’(8월 17일) ‘방탄소년단 신드롬’(11월 2일) 등도 마찬가지.

 ▽7=현재 한국 사회에서 대중문화가 차지하는 위상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봐. 정치 사회 이슈에서 풀지 못하는 응어리를 다 쏟아붓는 모습도 보여. 뭔가 이중적인 잣대가 작용한다고나 할까. AOA를 만났을 때도 그런 고민을 들었지. “진짜 내 모습으로 섰을 때 날 사랑해줄 사람이 몇이나 될까.”

 ▽41=1년 동안 추적한 과제들을 쭉 살펴보면, 지금 이 땅엔 피로와 분노가 켜켜이 쌓여있단 느낌을 지울 수 없어. 사람 관계에 지쳐 혼자 밥 먹거나, 청춘들이 ‘중독놀이’(2월 4일)나 ‘결정놀이’(3월 16일)에 열광하는 것도. 세상은 갈수록 풍요로워지는데, 성취는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

 ▽9=청춘만 힘들었던 건 아니겠지. ‘개저씨’에 대한 항의도 엇비슷한 메커니즘 아니었을까. 대다수 중년 남성은 가장 노릇 하며 열심히 살고 있는데 그걸 무시당했다고 느껴서 울화통이 터진 거겠지.

 ▽23=우리 요원들에게 부족했던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반성할 수 있겠네. 이런저런 문제를 잘 지적하긴 했는데, 뭔가 위로를 전해주진 못했어. 어쨌든 이제 우리 임무는 끝났으니 귀환할 채비나….

 그런데 갑자기 귓전을 때리는 비상벨 소리. ‘삐뽀삐뽀, 삐뽀삐뽀∼.’ 최첨단 전보가 찌직찌직 작동하며 글자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연말보너스 없음. 연차수당 삭감. 그리고 뭣보다, 복귀시점 무기한 연장.’

 깜짝 놀란 요원들이 서로를 마주 보며 멍 때리는 순간. 회의실 모니터가 탁 켜지며 의문의 사내가 등장하는데…. (다음 회에 계속)
 

▽요원 명단
 
에이전트 2=정양환 기자
에이전트 5=김윤종 기자
에이전트 7=임희윤 기자
에이전트23=이서현 기자
에이전트31=장선희 기자
에이전트41=김배중 기자
에이전트 9=이지훈 기자
#촛불집회#설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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