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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가야의 위엄 서린 황금칼, 전설의 왕국 ‘다라국’의 실체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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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가야의 위엄 서린 황금칼, 전설의 왕국 ‘다라국’의 실체 밝히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5-24 03:00수정 2017-05-2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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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합천군 옥전 고분군
M1호분서 발굴된 로만글라스… 서역과의 문물 교류 알 수 있어
다라국 전성기 대표하는 M3호분… 정교한 장식의 둥근고리자루큰칼… 금귀고리-갑옷 등 유물 쏟아져
“가야연맹 소속됐던 다라국… 6세기 후반 백제와 동맹 맺어”
조영제 경상대 교수가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에서 1985년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합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19일 경남 합천군 옥전서원(玉田書院) 옆 야산에 들어서자 사람 키를 넘는 거대한 무덤들이 나타났다. 능선을 따라 위아래로 길게 늘어선 20여 기의 봉분은 멀리서 보면 마치 낙타 혹 같다. ‘어딘가 눈에 익은 풍경인데….’ 지난 시리즈에서 취재한 발굴 유적 32곳의 기억을 더듬어 본다. 야트막한 구릉에 고총(高塚)들이 빽빽이 자리 잡은 모습이 부산 동래구 복천동이나 경남 김해시 대성동의 금관가야 고분을 닮았다.

답사에 나선 조영제 경상대 교수(64)가 심중을 읽은 듯 한마디 거들었다. “이곳 합천 옥전 고분군에 묻힌 다라국(多羅國) 지배층은 순수 토착세력이 아닙니다. 서기 400년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한반도 남부를 공략하자 김해 금관가야에서 넘어온 사람들이죠.”

○ 지중해산 로만글라스 발견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로만글라스. 국립중앙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제공
“이건 금관보다 더 귀한 거요….”

1991년 9월 옥전 고분군 M1호분(M은 봉분(Mound)을 뜻함) 발굴 현장. 발굴 지도위원으로 현장을 찾은 김원룡 서울대 교수가 로만글라스(Roman glass·로마와 속주에서 제작된 유리그릇) 출토품을 손에 쥐고 읊조렸다. 한국 고고학의 대가는 감격에 젖어 손마저 가늘게 떨었다. 혹여나 귀한 유물을 떨어뜨릴까 봐 한병삼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이 로만글라스 아래로 손을 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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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고인이 된 고고학계 원로들이 당시 흥분했던 건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고대 한반도에는 투명한 유리 재질의 로만글라스를 만드는 제조 기술이 없었다. 따라서 멀리 지중해로부터 광활한 실크로드를 거쳐 들어온 로만글라스는 서역과의 문물 교류를 보여주는 핵심 증거다. 당시 로만글라스는 경주 신라고분에서만 나왔는데, 경주 이외 지역에서 발견된 건 이것이 유일했다.

로만글라스의 출토에는 우여곡절이 있었다. 출토 1년여 전 인근 옥전서원 문중에서 “안산을 함부로 파헤칠 순 없다”며 발굴을 막았다.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 오히려 제대로 보존할 수 있다”고 설득해 1989년 4월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지만 그새 주곽(主槨) 일부가 도굴됐다. 크게 낙심했던 발굴팀이 시신 발치 쪽에 깔려 있던 갑옷을 노출하던 도중 로만글라스 조각을 찾아냈다. 다행히 마구 밑에서 나머지 조각들이 나와 로만글라스를 완전체로 복원하는 데 성공했다.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금귀고리. 국립중앙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제공
학계는 M1호분이 조성된 5세기 3분기(451∼475년)부터 옥전 고분에서 로만글라스와 창녕계 토기 등 신라 계통 유물이 나타나고, 거대한 봉분 무덤이 출현하는 데 주목한다. 5세기 신라에서도 높은 봉분의 적석목곽분이 유행했다. 다라국이 신라와 교역하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분석된다. M1호분보다 시기가 앞서는 5세기 초 무덤에서 갑옷과 투구, 금장식품이 처음 모습을 드러내고 목곽묘 규모가 갑자기 커지는 양상도 눈길을 끈다. 조영제는 “이때 부장품은 김해 지역의 가야고분과 연관성이 깊다”며 “5세기 초 광개토대왕 남정을 계기로 금관가야 세력이 합천으로 옮겨온 사실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황금빛 용과 봉황 함께 날다

경남 합천군 옥전 고분군에서 출토된 ‘용봉무늬 둥근고리자루큰칼(용봉문 환두대도)’ 손잡이. 5∼6세기 다라국의 정교한 금속공예 기법을 알 수 있는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국립김해박물관 제공
‘용띠 해에 합천에서 용이 승천했다.’

1988년 초 옥전 고분군 M3호분에서 용봉무늬 둥근고리자루큰칼(龍鳳文環頭大刀·용봉문 환두대도) 4점이 한꺼번에 출토되자, 국내 언론들은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서울 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한껏 들뜬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 보도가 과장된 것만은 아니었다. 용이나 봉황 문양을 새긴 둥근고리자루큰칼이 한 무덤에서 4점이나 나온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그때까지 화려한 장식의 둥근고리자루큰칼이 출토된 곳은 무령왕릉과 천마총밖에 없었다. 더구나 옥전 고분 둥근고리자루큰칼은 금·은 장식이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지름이 21m에 이르는 M3호분은 다라국 전성기를 대표하는 거대 무덤이다. 이곳에서는 둥근고리자루큰칼뿐만 아니라 금귀고리, 금동장식 투구, 갑옷, 말 투구(馬胄), 쇠도끼 등 각종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일제강점기 때 도굴 시도가 있었지만 다행히 석곽 가운데가 아닌 측면의 돌무더기를 뚫는 바람에 대부분의 유물이 온전할 수 있었다.

역사학계는 옥전 고분군이 일본서기에 몇 줄만 언급된 다라국의 실체를 밝힐 수 있는 열쇠라고 평가한다. 조영제의 설명. “5세기 말, 6세기 초 옥전 고분에서 대가야계 유물이 집중적으로 출토되다가 6세기 후반 백제계 유물이 주로 나옵니다. 이는 다라국이 대가야를 주축으로 한 가야연맹에 소속됐으며, 6세기 후반 신라에 맞서 백제와 동맹을 맺은 사실을 보여줍니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32> 경주 월지(안압지) 발굴
 
<31> 부산 복천동 고분
 
<30>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합천=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다라국#가야연맹#합천군 옥전 고분군#조영제 경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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