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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오백년 견딘 신라 목간 308점, 석성의 진짜 주인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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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오백년 견딘 신라 목간 308점, 석성의 진짜 주인 밝히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4-12 03:00수정 2017-04-12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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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30>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
10일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성벽 위에서 박종익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과 조희경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연구원, 정인태 학예연구사(왼쪽부터)가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함안=박경모 기자 momo@donga.com
가파른 경사를 헐떡이며 15분쯤 올라갔을까. 약 3∼5m 높이의 흙벽이 사방을 두른 넓은 풀밭이 펼쳐졌다. 고원에 자리 잡은 아늑한 분지를 연상시켰다. 풀때 입은 흙벽을 자세히 살펴보니 온통 돌무더기. 자연석이 아닌 축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다듬은 돌들이었다.

10일 박종익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장(56), 조희경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연구원(58), 정인태 학예연구사(38)와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 북동쪽 성벽에 오르자 옆으로 길게 늘어선 원형 봉분 수십 기가 내려다보였다. 아라가야 왕릉인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이었다. 발굴 전 학계에서 이곳을 아라가야의 산성으로 본 이유다. 하지만 26년 전 박종익이 이끈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발굴팀은 성산산성이 가야가 아닌 신라 석성임을 규명하게 된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전체 목간의 절반에 육박하는 308점의 신라 목간이 성산산성에서 무더기로 출토됐다.

○ 밝혀진 석성의 정체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의 동쪽 성벽 발굴 현장. 저수지가 이곳에서 발견됐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성벽 옆에 또 다른 성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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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11월 말 성산산성 발굴 현장에 수수께끼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남문 터 동쪽 성벽 아래 쌓인 돌무더기를 제거하자, 삼각형 단면의 석축이 나타난 것이다. 석축은 마치 성벽을 뒤에서 떠받치듯 외벽에 바싹 붙어 있었다. ‘이중 성벽인가? 아니면 다른 구조물?’ 박종익이 새로운 유구의 정체를 놓고 한참 고민할 때, 1970년대부터 경주 발굴 현장에서 산전수전 겪은 조희경의 입에서 결정적인 힌트가 흘러나왔다. “예전 경주 명활산성 발굴 때 본 거랑 비슷한데….”

부리나케 명활산성 발굴 자료를 찾아보니 돌 재질은 달랐지만 성산산성과 흡사한 삼각형 단면의 석축 사진이 있었다. 신라 석성에서만 보이는 이른바 ‘외벽(外壁) 보축(補築)’이 분명했다. 신라인들은 산성의 몸체에 해당하는 체성벽(體城壁)을 수직으로 쌓아올린 뒤 무너질 것을 대비해 옆에서 볼 때 이등변 삼각형 모양인 보축을 성벽 아래 붙여 세웠다. 이것은 신라식 귀면와, 막새기와 등과 더불어 성산산성이 신라 석성임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학계는 출토된 신라목간 내용과 일본서기 기록 등을 감안해 6세기 중엽 신라가 성산산성을 세운 걸로 보고 있다. 다음은 박종익의 회고.

“1991년 발굴에서 외벽 보축의 시작점을 발견했습니다. 문지(門址)를 따라 시작되는 보축의 정확한 위치를 파악한 건 우리가 처음이었어요.”

○ 목간의 보고(寶庫) 성산산성

경남 함안군 성산산성에서 출토된 각종 목간. 대부분 동문 터 근처 부엽층에서 발견됐다. 우리나라 출토 목간의 절반가량인 308점의 신라 목간이 나왔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듬해인 1992년 6월 초 박종익은 진귀한 ‘첫 경험’을 했다. 발굴 인생에서 처음으로 묵서(墨書)가 적힌 목간을 발견한 것이다. 목간은 동문 터 부근 지하 2m에 깔린 부엽(敷葉·배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나뭇잎이나 가지를 깔고 흙을 쌓은 것)층에서 나왔다. 부엽층은 외부 공기가 차단된 채 습기를 머금고 있어 나뭇조각 같은 유기물질이 1000년 넘게 보존될 수 있는 특수한 환경을 제공한다.

박종익이 발견한 목간에는 한자로 ‘上彡者村(상삼자촌)’이라는 지명과 ‘波婁(파루)’라는 인명이 함께 적혀 있었다. 신라 지방민이 성산산성으로 물자를 보내면서 꼬리표로 붙인 것이었다. “물에 닿은 목간 묵서가 천년 세월에도 불구하고 선명해서 놀랐습니다. 성산산성 발굴에서 가장 흥분되는 순간이었죠. 당시엔 이곳에서 목간이 수백 점이나 쏟아져 나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묵서 판독을 위한 적외선 카메라가 연구소에 도입돼 출토 목간 26점을 분석한 발굴보고서가 1998년 발간되자 학계는 커다란 관심을 보였다. 현존하는 1차 사료가 없는 삼국시대 연구에서 명문은 역사를 새로 쓸 수도 있는 핵심 자료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1999년 11월 한중일 3개국 학자들이 참여한 ‘목간 국제학술회의’가 열렸다. 목간과 관련한 국제학술회의는 국내 최초였다. 학술회의에서 이성시 와세다대 교수(현 한국목간학회장) 등 일본 학계는 “성산산성 목간은 일본 고대 목간의 원류를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한일 고대 교류사 연구에서도 성산산성 목간 발굴은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한일 학자들이 성산산성 목간을 지속적으로 연구한 결과 현재의 경남, 경북, 충북 지역에서 피와 보리, 쌀, 철 등 각종 물품을 산성으로 운송한 정황이 드러났다. 이 교수는 ‘한국 목간과 한국사 연구’ 논문에서 “성산산성 목간은 신라의 지방지배 체제와 역역(力役) 동원 체제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썼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9> 동삼동 패총의 재발견 하인수 부산근대역사관장
 
<28> 공주 수촌리 고분 발굴
 
<27>경주 사천왕사터 발굴
  
함안=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경남 함안 성산산성 발굴#신라 목간#성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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