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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남한 최초 발굴된 구석기시대 집자리… 日 식민사관 잠재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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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남한 최초 발굴된 구석기시대 집자리… 日 식민사관 잠재우다

김상운 기자 입력 2017-01-25 03:00수정 2017-01-25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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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공주 석장리 유적 발굴한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가 18일 충남 공주시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 당시를 회고하고 있다. 그의 등 뒤로 깃발이 꽂힌 장소가 한국 구석기 첫 발굴지로 1964년 1호 구덩이가 있던 곳이다. 공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달 18일 충남 공주시 석장리 유적. 나뭇가지로 엮은 막집 뒤로 수려한 능선과 강줄기가 뻗어 있다. 멀리 강가 공터에 ‘한국 구석기 첫 발굴지’가 적힌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그렇다. 이곳은 남한 최초 구석기 유적(1964년 발굴)으로 국사 교과서와 공무원시험에 단골로 등장하는 석장리 유적이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시리즈 기획취지에 따른다면 석장리 발굴을 주도한 파른 손보기 선생(1922∼2010)을 인터뷰해야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이미 고인이 됐다. 그 대신 파른의 제자로 1969년(당시 연세대 3년생)부터 5년 동안 발굴에 참여한 박희현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와 현장을 찾았다.

 48년 전을 회상하던 그가 강가 나루터를 한동안 쳐다보았다. “지금이야 번듯한 박물관까지 들어섰지만 그땐 도로조차 없어서 발굴 장비랑 식자재를 매일 배로 실어 날랐어요.”

○ 3만 년 전 구석기 집자리 발굴

공주 석장리 유적에서 발굴 작업을 벌이고 있는 파른 손보기 선생의 생전 모습(위 사진). 아래는 이곳에서 1968년 남한 최초로 출토된 주먹도끼. 석장리박물관 제공
 1970년 4월 석장리 발굴현장 1지구 51번 구덩이. 삽으로 흙을 파내려 가던 연세대 박물관 발굴팀이 갑자기 긴장했다. 주변 흙과 색깔이 다른 토층이 발견된 것. 변색된 흙은 범상치 않은 동그란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전형적인 기둥자리 흔적이었다. 현장을 지키던 파른의 지휘 아래 박희현 등 조사원들이 달라붙어 주변을 파자 총 5개의 기둥자리가 드러났다. 불을 뗀 자리도 같이 나왔다. 남한에서 구석기시대 집자리(막집)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막집에 살던 구석기인들이 사용한 긁개와 밀개, 새기개 등도 한꺼번에 발견됐다. 북한에서는 이보다 1년 앞서 굴포리 유적에서 구석기 집자리가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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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자리는 수렵 이동생활을 영위한 구석기인들이 머문 공간이라는 점에서 단순히 석기만 발견되는 것보다 의미가 크다. 집자리 위치와 내부 유물의 출토 양상을 통해 구석기인들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석장리 1호 집자리 안에서 발견된 오리나무 재질 ‘숯 조각(목탄·木炭)’이 특히 중요했다. 파른은 국내 고고학계에서 처음으로 목탄에 대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을 실시했다. 한국원자력연구소 측정 결과, 후기구석기에 해당하는 ‘3만690년 전’ 유물로 나타났다. 이로써 1960년대 석장리가 구석기 유적이 맞느냐를 놓고 벌어진 논란은 일단락됐다.

 앞서 석장리 유적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고고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인 1962∼1963년 이곳을 답사한 앨버트 모어 부부였다. 이들은 마침 홍수로 무너진 금강 주변토층에서 뗀석기를 여럿 발견할 수 있었다. 당시 연세대 방문교수였던 앨버트 모어는 1964년 봄 파른과 함께 석장리를 답사했다.

○ 식민사관 극복한 ‘한국 고고학 선구자’

 “일본인의 식민사관에 의한 선사(先史) 편년은 근본적으로 재검토되어야 한다.”(연세춘추 1964년 12월 7일자 기고문)

 파른은 1964년 석장리 1차 발굴을 마친 직후 연세대 학보에 실은 기고문에서 식민사학 극복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일제강점기 대학교육을 받은 파른은 민족의식이 강한 역사학자였다. ‘한반도엔 구석기시대가 없다’는 우메하라 스에지(梅原末治) 등 일본 학자들의 주장에 그는 동의할 수 없었다. 사실 이미 1934년 함북 종성군 동관진 유적에서 구석기 유물(흑요석 석기, 동물 뼈)이 발견돼 1941년 나오라 노부오(直良信夫)가 논문까지 발표했지만, 일본 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일본의 선사시대 역사 왜곡은 비단 1930, 40년대에만 그치지 않았다. 2000년 전모가 드러난 후지무라 신이치(藤村新一)의 구석기 유물 조작사건이 대표적이다. 후지무라는 1981년 미야기(宮城) 현에서 4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을 발굴했다고 발표했지만 거짓으로 밝혀졌다.

 일본식 학술용어에서 벗어나 뗀석기 용어들을 한글화한 것도 파른의 공이다.

 “발굴 기간 내내 한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조사에 몰두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한 분이었습니다.”

 1974년 석장리 발굴에 참여한 한창균 연세대 교수가 기억하는 파른이다. 파른은 본래 조선사를 전공했지만 석장리와 인연을 맺고 나서 선사 고고학자로 거듭났다. 영어와 일본어,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파른은 초인적인 노력으로 해외 고고학 원서들을 섭렵했다. 목탄 수종(樹種) 분석과 꽃가루 분석, 토양 산도 측정, 방사성탄소연대측정 등 다양한 자연과학 분석을 국내 발굴 현장에 최초로 적용한 것도 그의 중요한 업적이다.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24> 익산 왕궁리 유적 발굴한 최맹식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이주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 전용호 학예연구사

<23> 경주 손곡동 유적 발굴한 이상준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장


<22> 광주 월계동 ‘장고분’ 발굴 임영진 전남대 교수
 
공주=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구석기 시대#집자리#석장리 유적#박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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