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그래도, 우리, 살아야 하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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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아바의 ‘Happy New Year’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곧 2018년입니다. 새해가 되면 듣기 싫어도 아바(ABBA)의 ‘Happy new year’를 몇 번은 듣게 될 것입니다. 미디어는 물론 창작자들의 창의력 부족 때문이죠. 멜로디는 복 많이 받으라는 것처럼 경쾌하지만, 가사는 오히려 쓸쓸하고 우울한 내용의 노래를 아직도 기쁜 새해를 기원한다며 들려주니까요.

이 노래에서 아바는 자신들의 전성기였던 1970년대에 이별을 고하며, 깊어만 가는 그룹 멤버들의 갈등을 지켜보며(결국 멤버들은 모두 이혼을 했죠), 그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꿈과 길을 잃었는지, 그래서 얼마나 허무하고 외로운지를 돌아봅니다. 그리고, 그래도 삶은 살아져야 하기에, 미래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자고 말하죠. 희망과 의지가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다고.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고.

지난 한 해를 돌아보며 만족감과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을 것입니다. 늘 원망과 후회와 분노와 슬픔이 우리에게 더 가까이 있죠. 우울증은 내가 원하는 삶을 제대로 살고 있지 못하다는, 앞으로도 그러지 못하리라는 두려움과 절망에서 비롯됩니다.

우울증의 가장 큰 두 가지 이유는 자신의 기대와 능력의 부조화, 그리고 우리를 둘러싼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들과의 부조화입니다. ‘대인관계 정신치료’에서는 우울증의 원인을 ①소중한 대상 혹은 역할을 잃은 애도 ②관계 내에서의 서로의 역할에 대한 갈등 ③역할 변화 시도의 어려움이나 새로운 역할에 대한 부적응 ④대인관계 능력의 부족 혹은 결핍, 이렇게 네 가지로 구분합니다.

애도의 과정은 ①현실 부정 ②왜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는 분노 ③이렇게 하면 다시 원래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타협 혹은 거래 ④그래도 원래로 돌아갈 수 없음에 절망하는 우울 ⑤마지막으로 현실을 수긍하고 새로운 시작을 도모하는 수용의 단계를 거칩니다. 소중한 사람 혹은 역할을 잃었을 때 내가 어떤 단계를 지나고 있는지를 파악할 수만 있어도, 애도 과정을 잘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관계 내에서의 역할에 대한 갈등의 해결은 늘 가장 어려운 문제입니다. 내가 아니라 남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입장을 바꿔 생각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힘듭니다. 내 언행이 타인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객관적으로 보고, 또한 타인으로 인해 내가 느낀 어려움을 발전을 위한 방식으로 공유할 수 있을 때에야 해결이 가능하죠.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갈등이 깊어만 갈 때에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차를 갈아타야 합니다.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는 역할에 적응하려면, 그 변화로 얻게 되는 장기적인 장점과, 적응하기 위해 발전시켜야 하는 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떠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면, 왜 그러는지, 어떻게 혹은 누구에게서 지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을지를 파악해야 하죠.

올해를 잘 돌아보고, 새해에는 현실을 잘 수용하는 동시에, 더 좋은 관계를 만들어 사랑하고, 우리에게 요구되거나 우리가 원하는 역할들에 잘 적응하며 발전하는,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는 기쁜 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아바의 말처럼 희망과 의지가 없다면 죽은 것과 다름없으니까요. 우리 함께 다시 새롭게 시작하죠!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2018년#새해#아바#abba#happy new ye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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