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기의 음악상담실]약속 안 지키는 사람의 뇌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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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존 멜런캠프의 ‘Wild Night’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와일드 나이트’, 시끌벅적한 밤은, 제가 정말 좋아하는 밴 모리슨의 곡입니다. 1971년에 발표된 원곡은 잘 알려지지 않았었는데 존 멜런캠프가 1994년 리메이크해 히트를 쳤죠.

 드럼이 비트를 제시하면 개구쟁이 같은 베이스가 궁둥이 춤을 추기 시작합니다. 멜런캠프가 까칠한 목소리로 노래를 하는데, 기타는 1절이 다 끝날 즈음에서야 한참 뒤늦게 대통령의 사과처럼 들어오죠. 지각한 기타는 방귀 뀐 놈처럼, 꼬마가 발을 콩콩 구르면서 생떼를 쓰는 것처럼 징징거립니다.

 이 노래의 백미는 노래가 한 절씩 끝날 때마다 반주를 딱 멈추는 것입니다. “즐겁게 춤을 추다가 그대로 멈춰라!” 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게 숨죽이고 있다가 동시에 장난스러운 리듬을 재개하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음악은 연주자들이 이런 단순한 약속을 정확하게 잘 지키는 것만으로도 큰 기쁨을 줍니다. 긴장의 고조와 기대의 충족을 동시에 주는 것이죠.

 저는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인데 진료실에서 제일 많이 듣는 질문 중의 하나가 “우리 아이는 왜 약속을 안 지키죠?”입니다. 답은 귀댁의 자녀가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의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은 대부분 처음부터 그 약속을 지킬 의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연구 결과에 의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약속을 할 때부터 거짓말을 하는 뇌파를 보입니다.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이득을 얻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려고 약속을 했던 것이죠. 뭐 해주면 공부하겠다는 청소년이나 곧 집에 간다는 남편을 떠올리면 됩니다.

 인간은 늘 좋은 사람으로, 윤리적인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지키지 못할 약속을,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자신의 능력을 착각하며 하죠. 그리고 후회하며 자기 합리화와 남 탓을 합니다. 자신에게 지나치게 높은 기대를 한다고, 아니 강요를 한다고 말이죠.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두 번째 이유입니다. 약속은 아무도 모르게 자기 자신에게만 할 때 지킬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세 번째로는 약속을 지켜도 대단한 득이 없기 때문입니다. 상황은 늘 달라지고, 인생에 대단한 득은 없습니다. 상대방을 잃어도 크게 손해가 될 것 없다고 판단할 때 약속은 즉각 파기되죠.

 참고로, 논란이 많지만 우리나라 다수의 성인은 여전히 청소년기의 윤리 수준으로 살다 죽고, 따라서 대한민국은 많은 연구 결과에 의하면 윤리 수준이 가장 낮은 국가 중의 하나입니다. 유교적 전통이 서양의 윤리와 다르기 때문에 저평가되었다는 반론이 있죠. 그런데 제 경험으론 제가 알고 있는 유교적 윤리를 우리나라에서 접한 지는 무척 오래되었고, 청소년기의 특징인 자기 합리화와 억울함의 포효는 매우 자주 접합니다. 아마 제가 잘못 배웠고, 나쁜 것만 선택적으로 보는 것 같습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말아야 하고 안 지킬 것이면 들키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저녁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시끌벅적한 저녁이 될 것 같습니다. 속이 상합니다. 약속을 잘 지켰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테니까요. 하기로 했으면 딱 해야 하는데, 그래야 2절을 시작할 수 있는데….

김창기 전 동물원 멤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와일드 나이트#밴 모리슨#존 멜런캠프#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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