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용의 다른 경제]이정현이 만든 “대전은요?” 신화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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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2006년 지방선거 유세 중 피습당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수술 직후 “대전은요?”라고 물었다는 이야기는 2012년 대선까지 ‘박근혜 리더십’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1979년 10·26사태 직후 “휴전선은요?”라고 했던 일화와 함께 박 대통령의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통한다.

전 부처 대변인 대상 특강


문화체육관광부 국민소통실은 6월 14, 15일 강원 평창군에 전 부처 대변인을 불러 1박 2일 일정의 워크숍을 열었다. ‘대변인 간 유대를 돈독히 해 겨울올림픽 때 홍보의 시너지를 내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들이 2018년 평창 올림픽까지 대변인을 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효과는 의심스럽다.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이 당 대표가 되기 전 이 행사의 강연자로 나서 홍보 경험담을 나눴다. 여당의 대변인과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을 오래했으니 그의 경험은 정부 부처의 대변인들에게 도움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사회 부처 고참 대변인 A 씨가 전해준 강연 내용은 다소 충격적이다.

“2006년 5월 신촌 유세장에서 박근혜 대표가 피습당한 뒤 나(이정현)는 세브란스병원 입원실 주변에서 서성거렸다. 병실서 나온 유정복 당시 비서실장에게 ‘대표께서 무슨 말 없었느냐’고 물었지만 별것 없었다고만 했다.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말해 달라고 조르자 ‘대전 상황을 물어봤다’고 말했다. ‘대전은요?’ 기자 브리핑을 한 계기였다.”

박 대표의 말을 직접 들은 유정복이 부각하지 않던 대목을 이정현이 짚어내 의미 부여를 했다는 것이다. 국민소통실은 처음에는 강연을 못 들어서 내용 자체를 모른다고 했다. 나중에 직원이 적은 메모라며 들려준 내용은 이렇다.

“유정복 실장이 병실에서 나왔을 때 내(이정현)가 유 실장에게 상황을 설명해 달라고 요구했다. 박 대표가 수술에서 나오자마자 ‘대전은요?’라고 묻더라고 했다. 브리핑을 했고 다음 날 신문 1면이 이 말로 도배됐다. 대변인 역할에 따라 부처를 죽일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다.”

부처 대변인 A 씨의 전언대로라면 이정현은 숨어 있던 팩트를 찾아 홍보한 반면 국민소통실이 기록한 이정현은 누구나 알 수 있는 팩트를 재차 강조하는 홍보를 한 것이다.

전자의 이정현은 팩트를 과장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강연장에 가지도 않았던 국민소통실장이 “이 대표는 빈틈없는 분인데 그렇게 말했을 것 같지 않다. 대변인들이 잘못 알아들었을 것”이라며 펄펄 뛰었다. 강연의 순수성을 입증하는 메모가 많지만 개인 메모여서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국민소통실이 수집했다는 ‘공개할 수 없는 메모’보다는 행시 출신의 머리 좋은 대변인들이 가감 없이 전해준 증언에 더 신뢰가 간다.

평소 ‘불통실’ 소리를 듣는 국민소통실이 이례적으로 이정현 옹호에 나서는 것을 보면 친박(친박근혜) 실세 여당 대표의 권세가 느껴진다. 전기료 폭탄 논란에도 꿈쩍하지 않다가 청와대의 이해관계가 걸려야 움직이는 관료사회의 속성도 드러난다.

‘승진하려면 홍보하라’

요즘 정부 부처들은 고참 국장을 대변인으로 선임한 뒤 1급으로 승진하려면 충성을 다하라는 신호를 주고 있다. 이정현 강연의 요지는 ‘열정적으로 홍보하라’였다지만 공직자들이 홍보를 하는 진짜 이유는 민생 개선이 아니라 대통령과 장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닐까.

이정현은 강연 당일, 페이스북을 통해 여당 대표 출마 의지를 밝혔고 결국 그 꿈을 이뤘다. 대변인들이 이정현식 홍보에서 뭘 배웠을지 물어보고 싶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국민소통실#여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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