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칼럼]바꿀 수 있어야 대통령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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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정책·인사에 너무 집착… ‘대통합’ 외치고 외길로 질주
‘대통령 우산’ 아래 숨은 인사들… 좌파 특유 ‘깨끗한 척’에 질려
정부 CEO 대통령이 바꿔야

박제균 논설주간
박제균 논설주간
누구나 내 판단이, 내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하고 싶어 한다. 틀리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자기보호 심리가 작동한 결과다. 인간의 뇌가 결정을 후회하는 데 따른 다양한 경우의 수, 즉 ‘그때 이런 결정을 내렸더라면’ ‘아니, 제3의 결정은 어땠을까’ ‘다음에는 이런 결정을…’ 등등 복잡한 걸 싫어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문재인 정부의 실정(失政)이 쏟아져도 문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은 ‘그래도 문재인 말고 찍을 사람이 누가 있었어’라고, 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은 ‘거 봐, 내 그럴 줄 알았지’라며 자기 결정을 합리화하기 쉽다.

일반인도 이럴진대 권력자는 어떨까. 특히 자신의 결정으로 성공을 거둔 권력자가 판단을 후회하고 번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정책이나 인사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부당한 공격’으로 치부하는 자기 합리화의 늪에 빠지기 십상이다. 그래도 문민정부 이후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비판 여론에 비교적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인사에 관한 한 비판을 즉각 수용하는 편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주장이 유난히 강했지만, 지지세력 내부의 반발에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 평택 주한미군 기지와 제주 해군 기지 건설을 밀고 나갈 정도로 유연함을 보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불통이었던 연유는 정권 말에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문 대통령은 그런 불통 이미지는 아니다. 그럼에도 이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한 번 결정한 정책이나 인사에 집착한다. 한미 동맹의 균열을 불러오고 북한의 핵 보유를 고착화시켜 우리 안보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는 대북정책에 대해선 더 말하면 입이 아프다.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경제학 이론에서 ‘듣보잡’이란 비판이 나오자 ‘세계적 족보가 있다’고 반박하는 대목에선 그 집요함에 감탄할 정도다. 인사청문보고서 채택 없이 강행한 장관급 인사는 집권 2년도 안 돼 박근혜 정부 4년 2개월의 10명에 맞먹을 태세다. 막장에 다다라 폭발 직전인 한일 관계도 어디로 끌고 가려는지 모르겠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펴낸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 “우리 쪽, 우리 내부의 비판을 받는 건 뼈아프다”면서도 “저하고 생각이 다른 입장에 있는 사람들의 일방적인 공격에 대해서는 정말로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고 단언했다. 우리 편은 ‘비판’, 다른 편은 ‘공격’이었다. 같은 책에서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의 가장 큰 잘못 중 하나가 국민 편 가르기였다”고 해놓고 국민을 ‘우리 편’과 ‘다른 편’으로 갈라 다른 편 주장에는 귀를 닫겠다고 한 것이다. 그래도 당선 이후 ‘대통합 대통령이 되겠다’고 한 그가 이렇게 외길로 달려갈 줄은 몰랐다.

문 대통령은 조국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교체하라는 요구에도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한다. 터지고 또 터지는 숱한 인사 참사에 여권 인사나 친여 매체에서도 경질론이 나오는 데도 그렇다. 이렇듯 과도하게 조 수석을 감싸는 것이 과연 그를 보호하는 걸까.

이명박(MB) 정부 2년 차인 2009년 2월 국가정보원장에 임명된 원세훈. ‘국정원의 정보 기능을 무너뜨렸다’는 등의 이유로 취임 3년 차인 2011년부터 경질론이 비등했다. 그런데도 귀를 닫은 MB는 자신의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를 원장 자리에 놔뒀다. 박근혜 정부의 우병우 민정수석에 대해서도 교체 요구가 쏟아졌지만 박 전 대통령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 두 대통령의 과도한 비호를 받은 실세들은 지금 어떤가.

물론 이명박의 원세훈, 박근혜의 우병우와 문재인의 조국을 수평 비교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무리일 수 있다는 점을 잘 안다. 다만 조 수석도 민심을 거스르면서까지 자리를 보전하는 것이 대통령에게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결국 자신에게까지 화가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통령이 ‘우리 편’에 철갑 우산을 쳐줄수록 그 아래 숨은 인사들은 기고만장하게 마련이다. 진보좌파 특유의 ‘깨끗한 척’까지 겹쳐 국민이 느끼는 ‘내로남불’의 괴리는 한강보다 넓어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5년 동안 대한민국 정부의 경영을 위임받은 최고경영자(CEO)다. 주요 정책이나 인사 결정은 CEO인 대통령만 바꿀 수 있다. CEO가 바꾸려 하지 않는다면 대주주인 국민이 나서는 수밖에 없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문재인 정부#인사참사#소득주도성장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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