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의 한국 블로그]몽골 학교, 한국 학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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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3 수험생들이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한국의 고3 수험생들이 교실에서 자습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라
얼마 전 2016년 대입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둘째인 아들이 한국 초등학교로 전학 간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내년이면 나도 고3 엄마가 된다. 아들은 어느 날은 역사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다가, 또 스포츠 매니지먼트를 공부하고 싶다고 하더니 이제는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가 더 걱정인 모양이다.

아이 전학 때문에 처음 한국 학교를 방문하고 신기했던 것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반 배정을 새로 하고 담임교사도 새로운 분이 온다는 사실이었다. 매년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바뀌면 아이들이 매번 새롭게 적응해야 하지 않나 싶었다. 몽골에서는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까지 한 건물에 있는 일이 많다. 한 번 어느 반에 배정되면 이사를 가게 돼 다른 학교로 전학을 가지 않는 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계속 같은 반, 같은 친구들과 공부하게 된다. 담임선생님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모두 한 분이 죽 같은 반을 맡는다.

그래서 몽골에선 학교 친구들끼리 매우 가깝고, 졸업 후에도 친하게 지낸다. 이전에 몽골 초중고교 전 과정이 10년제였을 시절(지금은 12년제로 바뀌었다), 고등학교 친구라면 대부분 10년을 함께 같은 반에서 공부하고 지내온 친구들이다. 새 학기는 매해 9월 1일 시작하는데 학교 말고는 재밌는 일이 별로 없던 몽골에서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 여름방학 내내 개학을 기다렸던 것 같다.

겨울방학은 일주일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여름방학은 길어 그땐 방학 과제가 많다. 겨울 기온이 영하 30도인 때가 보통인 몽골에서 왜 겨울방학이 여름방학보다 짧은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겨울엔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학교에 가려면 두꺼운 옷을 여러 벌 입어야 해서 옷 입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양말 두세 켤레에, 바지를 속에 입고 위에 니트 바지를 더 입는다. 위에도 잔뜩 껴입고 마지막으로 원피스 교복을 입어야 집을 나설 수 있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1980년대는 아직 몽골이 소비에트연방의 영향을 받는 사회주의 국가였다. 초등학생들도 교복을 입었고, 여학생들은 선생님이 정해준 색의 리본을 머리에 달고 다녔다. 학교에 들어가면 우리가 몰래 ‘대머리 아저씨’라는 별명으로 불렀던 레닌, 그리고 ‘수염 아저씨’라고 부른 마르크스, 엥겔스 사진들이 걸려 있는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몽골의 독립 영웅 수흐바타르 사진이 칠판 위 중앙에 걸려 있었다.

피아노, 태권도, 미술, 영어학원을 다녀야 하는 한국과는 달리 당시 몽골에는 사교육이 없어서 학교에서 옷이나 음식을 만들거나 악기, 노래 등을 배우는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 외에는 과외나 학원 같은 개념이 없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워 보니 몽골과는 매우 다르다. 다녀야 하는 학원은 왜 그리 많은지, 영어는 왜 모든 학생이 학원을 다니며 추가로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가 잘 안 갔다. 아이가 고3이 되어 가는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학년이 올라갈수록 공부에 대한 압박이 늘어만 가는 아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는 얘기를 그리 많이 하진 않았다. 모든 학생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공부하지만 모두가 원하는 결과를 얻는 것이 아니라서 아들을 보면 걱정이 들 때가 많다.

고3이 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요즘은 나의 학창시절 재밌었던 기억에 대해 얘기해주곤 한다. 몽골은 5월에도 눈이 오곤 하지만 눈 밑에서 피어 올라오는 ‘야르구이’라는 봄꽃이 3월쯤 보이기 시작하면 ‘봄’이라고들 한다. 방과 후 꽃들이 가득 핀 들판을 걸어 집으로 오는 길에 보이던 수채화 같은 장면을 설명해주기도 하고, 엄마 몰래 친구들과 저녁에 영화관을 갔다가 혼났던 이야기, 여학생들이 교복을 짧게 줄여 입다가 학교에서 벌서던 이야기, 껌을 씹고 싶은데 미국 달러만 받는 상점에서만 껌을 팔아서 소나무 송진을 모아다 아이들이 껌처럼 씹던 이야기들을 해준다. 그러면 아들은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재밌게 듣는다.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아이를 위해 얘기를 해주는 건지 아이가 나를 위해서 들어주고 있는 건지 잘 모르겠다 싶을 때도 있다. 그래도 이게 내가 아이와 소통하는 방법이고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작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내 얘기를 아이가 재밌게 듣는 걸 보고 가끔 남편이 자기 얘기도 한 번 들어보라고 끼어든다. 시간이 늦어 아이가 하품을 해도 본래 설명이 끝없이 긴 남편은 콩 서리하다가 들킨 얘기, 낚시 가서 넓적다리만 한 잉어를 잡은 얘기, 방학 때 시골에 가서 개구리 잡으러 다니던 얘기들을 꼭 끝내야 한다. 아버지의 긴 설명에도 아이는 참을성 있게 듣는 편이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싱긋 웃곤 하지만.

※이라 씨(38)는 몽골 출신으로 2003년부터 한국에서 살고있다. 2010년부터 4년간 새누리당 경기도의원으로 활동했다. 현재는 다문화여성연합 대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라
#수능#몽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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