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펜스의 한국 블로그]더 나은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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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고리 림펜스
그레고리 림펜스
10년 전 이맘때 나는 벨기에 친구 두 명의 내한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한국에 산 지 얼마 안 됐을 때였고 벨기에 친구들이 한국을 방문하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기대가 큰 만큼 가슴이 설렜다. 그 두 친한 친구한테 내가 새롭게 정착한 나라를 제대로, 좋은 모습으로 소개하고 싶었다. 다행히 나의 두 친구는 실망하지 않았다. 설악산, 경주, 부산, 그리고 1월 1일 오전 짙은 안개가 낀 종묘 앞에서 열심히 가요를 부르고 춤을 추는 어르신들이랑 소주를 한잔하며 2006년을 신나게 시작했다.

그 후 한국을 방문한 다른 지인들도 한국에 실망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휴가를 내서 놀러 온 또 다른 유럽 친구들, 아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셨던 부모님, 동남아 여행을 가는 길에 잠시 서울에 머문 우리 누나 친구들, 한국 거래처로 출장을 온 남편과 같이 여행 온 사촌동생 등도 한국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일 때문에 만났던 사람들(외국 작가, 해외 출판사 저작권 담당자나 에이전트 관계자 등)도 나와 함께 서울 시내 구경을 하면서 만족스러워했다. 이번 주에도 나는 손님을 한 분 맞았다.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르메트르가 주한 프랑스문화원 초청으로 신간 장편소설 ‘오르부아르’를 홍보하러 왔다. 그가 한국에 머무는 동안 나는 이 책의 기획자로서 그와 동행하며 당연히 관광 안내자 역할도 하고 있다.

이들 중 몇몇은 한국의 매운탕 색깔을 보고 겁을 먹기도 했지만, 내 경험상 한국에 실망하거나 반감을 느낀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들 한국을 재밌게 체험한 것은 내가 대단한 호스트였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보다는 그들이 한국을 잘 몰랐기 때문에 기대감이 크지 않았을 수도 있는 것 같다. 내가 알기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유럽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관광안내 팸플릿을 보면 웬만한 아시아 국가들은 안내 소책자가 따로 있었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 정보를 얻기 어려웠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지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한국은 특별한 이미지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에 뚜렷한 생각이 없던 사람들은 그들이 새롭게 발견한 한국의 문화를 신기해할 수 있었다.

한국은 여행자들에게 충분히 인상 깊을 나라다. 호기심 많은 영혼에게 끝내주는 곳이라고나 할까. 서울만큼 놀기 좋은 도시도 많지 않다. 나도 한국을 방문한 손님에게 한국을 소개할 때면 새로운 시선으로 그 매력을 재발견하곤 한다.

하지만 한국에 살다보니 조금씩 문제들이 느껴지고 있다. 첫눈에 반하기 쉬운 그 역동적인 모습 뒤에는 비효율적인 직장 문화와 한국 노동자들의 고단함이 숨어 있다. 관광객들이 푸짐한 대접을 받으며 한국의 정을 느낄 때, 시민들은 다소 거친 현실에 노출돼 있다. 여전히 성 차별이 만연하고, 학생들은 사교육에 힘겨워하고, 많은 사람들은 검소하지 못한 소비 습관에 물들어 있다. 언론의 자유도 생각보다 많지 않으며, 체제 순응주의에 젖은 사람도 여럿이다. ‘땅콩 회항’ 같은 사건을 통해 족벌주의 사회도 엿본다.

얼마 전 ‘헬조선’이란 말을 처음 들었는데, 구체적인 설명을 듣기도 전에 이미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출퇴근 시간에는 늘 만원이 되는 2200번 통근 버스를 매일 타야 해서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인생을 힘들게 만드는 평상시의 그 답답한 일들부터 세월호 침몰 사고 같은 엄청나게 무섭고 가슴 아픈 사건들까지….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한국인보다 덜 강하게 와 닿을 수 있는 문제들이지만, 내가 이 나라를 좋아하는 만큼 솔직히 걱정이 된다.

하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한국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발휘할 잠재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늘 한국인의 환대에 감사하는 나에게도 이 나라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뽀로로를 좋아하는 세 살배기 조카 하이메(Jaime)가 뽀로로공화국 한국에 사는 외삼촌을 언젠가 방문하게 되면, 이 나라가 왜 이렇게 정들기 쉬운 나라인지 보여줄 것이다. ‘조선’이란 이름도 무슨 뜻인지 설명할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생활이 어떻게 나아지고 있는지, 어떤 점에서 살기 좋아지고 있는지를 설명할 때 얘기할 거리가 많았으면 좋겠다.

※벨기에 출신인 필자(39)는 벨기에 명문 루뱅대 법학과와 브뤼셀 KUB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장 법률사무소에서 근무하다 현재 출판사 열린책들 해외문학팀 차장으로 근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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