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자의 생각돋보기]크라잉넛에서 칸트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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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토퍼 네빈슨의 ‘1차 폭격 이후의 이프르’(1916년). 이프르는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벨기에의 도시다
크리스토퍼 네빈슨의 ‘1차 폭격 이후의 이프르’(1916년). 이프르는 제1차 세계대전 격전지였던 벨기에의 도시다
내지르듯 박력 있게 노래하는 펑크록밴드 크라잉넛의 노래 중 ‘룩셈부르크’라는 노래가 있다. 꿈을 펼치기 위해 세계지도를 같이 보자는 내용이다. 나라마다의 특색을 한마디씩으로 규정했는데,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다 같이 불러보자 룩셈부르크/석유가 넘쳐나는 사우디/사람이 너무 많은 차이나/월드컵 2연패 브라질/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하루 종일 레게 하네 자메이카/하루 왼종일 해 떠있는 스웨덴/신혼여행 많이 가는 몰디브 섬/이제 곧 하나가 될 코리아.” 모두가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내용인데 유독 미국만은 ‘전쟁을 많이 하는 나라’다. 젊은이들의 꿈을 이야기하는 경쾌한 노래 속에 슬쩍 끼워 넣은 야비한 반미(反美) 사상이다.

우리나라 좌파의 이념은 반미주의, 평화주의, 통일지상주의다. 그러나 최근 김정은의 광적 행태로 체제가 붕괴할지 모른다는 기류가 형성되자 좌파들은 현 체제 유지가 중요하고 통일은 그 다음 순서라고 한발 물러섰다. 결국 그들이 바라는 통일이 어떤 성격의 것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미세하지만 매우 중요한 지형학적 변화다. 크라잉넛의 노래도 만일 요즘 만들어졌다면 ‘하나 될 코리아’가 아니라 ‘둘이서 평화로운 코리아’가 되었을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 후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자 좌파들의 평화주의 공세가 일제히 포문을 열었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페이스북에 “정부가 국민을 이렇게 불안하게 해도 되는 것인가. 진짜 전쟁이라도 하자는 것인지,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과 국민을 안중에 두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글을 올렸다. 백낙청 씨는 현 상황이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아니라 평화를 둘러싼 상식과 비상식 간의 충돌이라며, 정부는 평화를 뒤흔드는 비상식적 행동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 진보의 ‘공자님’ 격인 미국의 진보학자 놈 촘스키는 남북한의 관계가 개선되면 보수 정권이 권력을 잃게 되므로 남한의 보수 정권이 남북 평화정책을 펼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외부로부터의 위기를 부추겨 위기의식을 일깨우는 것이 보수에 이익이 되고 기득권 수호에 중요하다”라거나 “끊임없는 전쟁 상태, 테러와의 전쟁이 기득권에 유익하다”라는 그의 말은 우리나라 철부지 20대들도 앵무새처럼 외우는 클리셰(clich´e·상투어)여서 대석학의 말치고는 어쩐지 공허하고 진부하다.

평화가 도덕적 정언(定言)명령이라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그러나 전쟁에 대한 대비 없이 ‘전쟁은 무섭다’라는 공포만 부추긴다면, 국민의 공포 자체가 적의 효율적인 무기가 되어 버린다는 것이 동서고금 모든 시대의 딜레마이다. 평화의 추구가 정책의 유일한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이다. 우리 국민은 평화를 사랑하여 한 번도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적이 없다는 것이 한국 민족주의자들의 자랑이다. 그러나 그 결과 임진왜란으로 일본에 당했고, 병자호란으로 중국에 당했으며, 결국 근대에 이르러 나라를 빼앗겼고, 아직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치욕을 겪고 있지 않은가?

“장구한 평화는 한갓된 상인 기질만을 왕성케 하고, 천박한 이기심과 비겁과 문약을 만연시켜, 국민의 심적 자세를 저열하게 만든다”(‘판단력 비판’)는 칸트의 지적이 그래서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요즘이다.

박정자 상명대 명예교수
#크라잉넛#칸트#반미주의#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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