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은/김종현]창업 3∼5년차 영세중소기업이 죽어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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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 한국정책재단 수석연구원
김종현 한국정책재단 수석연구원
“창업 수가 늘어나면 뭐해요?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언덕)’를 못 넘고 문 닫는 기업이 허다한데….”

데스밸리는 창업 3∼5년 된 영세기업이 중소기업으로 성장하기 전 자금, 판로, 경영 등에 어려움을 겪는 ‘자원이 고갈된 상태’를 뜻한다. 창업한 지 4년 된 한 중소기업 대표는 “초기 창업 단계에서는 정부와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과 컨설팅 지원을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었는데, 요즘은 하루 종일 정부와 투자기관을 돌아다녀도 성과가 없다”면서 “성장의 가장 큰 위기인 데스밸리 단계에서 정작 도움을 청할 곳이 없으니 막막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상당수 기업은 창업 후 3∼5년이 되면 기존 사업 아이템의 한계, 자금 부족 등으로 성장세가 둔화된다. 하지만 정부 정책은 창업 수를 늘려 일자리를 확충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데스밸리에 임박한 기업들은 제대로 된 금융 지원을 받지 못하고 주저앉아 버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실제로 신설법인 등록 수는 2014년 8만5000개, 2015년 9만4000개, 지난해 9만6000개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다. 하지만 2015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한국의 창업 3년 후 기준 생존율’은 고작 38%에 그치고 있다. 스웨덴(75%) 미국(58%) 등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다.

일자리를 만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기존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다. 좋은 아이디어로 자금을 지원받아 힘들게 날개를 편 기업들이 데스밸리의 장벽을 넘기지 못하고 힘없이 주저앉으면 고스란히 사회적 손실로 이어진다. 데스밸리에 처한 기업들이 매출 100억∼300억 원의 중소기업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이다.

이들의 대표적인 어려움 중 하나가 자금이다. 하지만 정부는 신규 아이디어와 정책 방향을 지원 기준으로 삼고, 벤처캐피털은 재무성과나 가치 등을 기준으로 삼다 보니 3∼5년 된 신생 기업이 이런 조건을 충족시켜 지원을 받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때문에 데스밸리 기업에는 ‘성장가능성’과 ‘핵심역량’에 비중을 높인 평가 기준이 필요하다. 민간 전문가의 지식과 경험, 시니어 은퇴 인력들의 지혜와 경륜, 네트워크 등을 활용한다면 데스밸리 기업들 중 옥석을 가리는 작업이 수월하다. 평가를 통해 지원을 한다면 데스밸리 기업도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인 데스밸리 단계의 기업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전략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중간 단계인 데스밸리를 겪고 있는 벤처, 영세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종현 한국정책재단 수석연구원
#창업#데스밸리#death valley#일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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